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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성현 울산문인협회장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7,530원으로 결정되었다. 노동자는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어 하고, 사용자는 조금이라도 덜 주고 싶어 한다. 이 문제는 자본주의가 해체되지 않는 이상 좀처럼 풀기 어려운 문제다. 이를 월급으로 환산하면 157만 원가량이 된다고 한다.
 문제는 월급이 오르고 6개월 후면 물가가 따라 오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인상의 효과를 피부로 느끼기엔 늘 부족하다. 그래서 해마다 근로자는 머리띠를 매고 투쟁을 한다. 투표로 파업이 결정되고 몇 차례 줄다리기가 끝난 뒤 발표되는 인상안이나 상여 금액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으로 작아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예술은 곧 가난'이라는 등식과도 같은 사회 일반의 인식은 가까이서 보면 더욱 심각하다. 최저 임금은 고사하고 전공으로 일자리를 얻기도 힘이 든다. 예술이라는 장르 자체가 '비용 질병'이 심한 분야라서 예술가의 의욕을 경제가 대답하지 못한다. 다른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결혼도 장래도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경제적 사정으로 눈물을 머금고 예술계를 떠났지만 언제나 컴백하고 싶거나, 떠나지 못한 사람은 당국의 예산에 기댈 수밖에 없다.
 서구사회에서 '예술'이라 함은 문학·미디어·공연 및 전시 예술을 포함하고 있다. 예술인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독특한 정신이나 정서를 추구해온 사람들이라 자신의 작품 가치를 화폐로 환산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또,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확장성과 창의력을 돈으로 환산하기란 매우 힘들다. 그렇기에 영국이나 프랑스나 미국과 같은 나라들은 문화예술을 국가 주요정책으로 설정하여 국민의 예술적 복지를 윤택하게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찍부터 이들 나라에서는 예술에 대한 공공지원정책의 체계가 정착되어 효과를 얻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 

 우리 울산광역시도 예술에 대해 상당한 예산지원을 하고 있고, 다른 광역 자치단체들과 비교했을 때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 본다. 문제는 예술의 소비자인 시민들의 관심도가 이를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당한 예산을 받아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해 놓고도 관객을 찾아 발로 뛰지 않으면 객석을 채우기 난감하다. 예술, 특히 공연 예술의 최저임금은 곧 꽉 찬 객석이 아닐까 한다. 연을 날리기 위해서는 바람이 불어야 하고, 바람의 협조가 없으면 기획자는 늘 바람을 불어 넣기 위해 동분서주 애를 쓰며 뛰어야만 한다.
 지난 7월 6일 대구시립국악단의 공연을 보기위해 대구문예회관 팔공홀을 찾았다. 울산에서 두 시간을 달려 찾아간 공연장은 입구에서 관객들로 분주했다. 객석을 가득채운 시민들의 모습에 고무된 연주자들의 표정을 보면서 참 부러운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다.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고 달리기 위해서는 일정 속도 이상을 유지하기 위해 페달을 밟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울산의 예술이 넘어지지 않도록 이제는 시민들이 그 페달을 밟아 줄 때라고 생각한다. 조선과 자동차 산업의 불황으로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여전히 울산은 소득 면에서 볼 때 예술을 즐길 여력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익숙한 것들과 결별을 하지 않고서는 공연장이나 전시장을 갈 시간도 관심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얼마 전 리모델링한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더욱 안락하고 음향이 풍부해진 객석에 앉아 울산시향의 연주를 들으면서 중세 귀족들이 누렸을 호사를 경험해 보는 것도 예술에 대한 한 응원이며 단원들에게 주는 시민들의 보너스다.

 울산이 산업 수도가 아닌 예술과 문화의 수도가 될 수 있도록 시민들의 우애로운 박수를 보너스로 주었으면 한다.
 예술과 문화를 숭상하지 않고서는 도시의 품격과 새 역사를 빚어내기 어렵다. 그 만큼 그것들은 우리들의 자잘한 일상과 개별적인 관습으로부터 빠져 나왔을 때 비로소 우리들에게 가슴을 여는 내밀한 소통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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