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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의 보존 대책인 생태제방안이 또다시 부결됐다. 생태제방안은 지난 5월 18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현장 재검토를 위해 보류됐고, 지난달 28일에는 문화재위원들이 현장을 검토했다. 문화재위원회는 "생태제방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고 역사 문화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할 가능성이 있으며, 공사 과정에서 암각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부결 이유를 밝혔다. 울산시는 이번 재심의에서 문화재위원들의 우려사안에 대해 하상 문화재 조사, 생태제방 설치에 따른 반구대 암각화 영향여부 판단을 위한 미시기후(온도, 습도, 풍향 등) 영향평가, 생태제방의 안정성 등 검토를 위한 수리모형실험 등 사전 실험과 조사 등을 선 이행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조건부 가결'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화재위원회의 이번 결정으로 세번째 도전에서도 부결된 제방 축조안은 사실상 퇴출당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앞서 2009년과 2011년에도 생태제방과 유사한 임시제방 설치안을 제출했으나, 모두 경관 훼손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부결된 바 있다. 울산시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시는 "또 다시 보존방안이 원점으로 되돌아가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은 문화재 보호에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문화재청은 대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허송 세월로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만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어서 탁상행정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시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부결 결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적의 방안인 생태제방 설치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주장하는 수위조절을 위해서는 부족한 청정원수에 대한 보완책이 선결돼야 한다. 정부가 제시하는 울산권 맑은 물 공급사업은 전제조건인 대구시와 구미시간의 원활한 합의에 의해 실행될 수 있으나, 현재 두 도시 간 첨예한 대립으로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시가 나서지도 못하고 강요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며 "올해처럼 가뭄이 계속될 경우 식수 전량을 낙동강 원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수질 악화 등 돌발 사고에 가슴 졸이며 불안한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번 부결사태가 이미 예견된 일이었고 애초부터 생태제방안은 문화재청의 보존안에서 배제됐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문화재청은 시와 함께 사업비를 투입해가면서 생태제방안 용역을 실시하는 쇼를 보였다. 한마디로 생태제방안을 퇴출하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문화재청의 쇼에 시가 놀아난 셈이다. 이는 대표적인 정부기관의 지역 홀대를 보여주는 사례다. 홀대를 넘어 멸시에 가까운 사례다. 문화재위원들이 주장하는 주변경관 훼손에 대한 우려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원형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지 되묻고 싶다. 반구대 암각화의 경우 암각화 자체의 보존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고 해당 유산의 보존에 더욱 관심을 집중해야 하는 것이지만 문화재청은 이 본질에서 이미 한참 벗어나 있다.
 십 수 년을 끌어온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 보존문제가 이제  다시 표류하는 상황에서 그 답은 아이러니 하지만 정치적 해결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 정부도 더 이상 문화재청에 문제의 해결을 맡겨둘 일이 아니다. 문화계에서도 정부가 더 이상 문화재위원들의 결정 뒤에 숨을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대안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암각화 연구자들은 "방법론을 가지고 논의하는 사이 반구대 암각화는 수도 없이 물에 잠겼다 나왔다를 반복하고 있다. 생태제방안이 부결된 만큼 정부가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문화재청이나 문화재계는 수위조절안을 고수해 왔지만 맑은 물 공급 사업이 현실성이 없을 뿐 아니라 지난해처럼 갑작스런 호우 등으로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경우도 생긴다. 현 시점에서 현실가능한 안은 생태제방안이지만 이를 거부한 이상 대안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암각화 연구자들은 "암각화 유적은 울산 것만이 아니라 전 국민의 것이다. 정부는 암각화를 세계유산에 등재시키겠다고 하는데, 전 세계인과 유적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겠다고 하면서 한국정부 스스로도 책임을 지지 않고 지방정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반구대암각화 자체를 보존의 중심에 두고 보다 현실적인 보존안을 위한 공론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전문가들은 "더 이상 물 문제, 정치적 문제 등으로 인해 반구대의 훼손이 지속되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며 "이제는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중안정부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이 가진 울산에 대한 인식이다. 물을 빼면 보존이 되는데 억지를 부린다는 식의 사고다. 시가 당장 물부족으로 40만톤 가까이 낙동강물을 매일 사오는 상황이지만 이를 제대로 살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런 식이라면 울산시민을 안중에 두지 않는 정부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물문제와 연계한 보존안을 고수하며 울산시민들을 자극한다면 120만 시민의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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