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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심수향 시인
2017년 08월 10일 (목) 20:25:08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삼복더위에 허덕일 때쯤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 납량특집이 있다. 공포에 몸이 오싹해지고 소름 돋는 동안 체감 온도 내려가는 효과가 있다니 더위를 잠시 잊으라는 배려의 프로그램이라 믿고 싶다. 울산시도 예외는 아니어서 태화강 대숲 납량축제가 곧 열릴 것이란다.

 우리는 왜 공포물에 깊이 매료되는 것일까? 무서움에 눈을 반쯤 가리고도 보고 싶어 하는 심리, 이건 단순호기심일까? 하지만 공포물 스토리는 예상을 완전 뒤집는 내용은 그다지 많지 않다. 어디서 한 번쯤은 들었음직한 내용, 짐작할 수 있는 결말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고 무서워한다. 어쩌면 무서워해야지 작정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아닌지 내 마음에게 물어볼 때도 있다. 공포라는 이 메뉴도 매운 음식처럼 중독이 되는 건 아닐까?

 내게는 귀신놀이로 어린 시절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나고 밤 마실 금족령이 내려진 화려한 이력이 있다.
 시골의 여름은 어디나 그렇지만 모깃불 피운 멍석 위에서 옛날이야기 듣다 잠드는 것이 일상이지만, 그도 심심해지면 밤마실을 나갔다.

 어느 해 여름. 옆집 언니가 대장으로 동네 꼬마 서너 명과 그 집 접머슴이 모여 귀신놀이에 돌입했다. 대나무를 열십자로 묶고 마른 박속을 해골처럼 얹고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혔다. 어둠 속에서 드러난 몰골은 알고 보아도 무서웠다. 꼬마 조연들의 역할은 과수원 골목에 서서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저 아래 귀신 있어요' 하고 호들갑을 떠는 일. 어른들이 '어험'하고 지나가면 숨을 죽여 키득거리며 이슥하도록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여자의 비명 소리가 동네를 뒤흔들었다. 어른들이 놀라 나오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언니랑 접머슴 오빠가 흔든 귀신 막대를 보고 아랫말에서 온 두 모녀가 비명을 질러댔던 것이다. 어른들이 우리 대신 빌고 사과하여 마무리 된 듯 했으나, 임신 중이던 딸이 유산할 뻔했다는 말이 알음알음으로 건너오는 바람에 어른들께 또 한 번 혼이 나고 귀신놀이와는 작별을 하였다.

 이것은 장난스럽게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이지만, 아직도 내게는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의문의 사건이 하나 있다.
 십여 년 전, 동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 있다. 일정에 아우슈비츠가 포함되어 있어 한편 궁금하기도 했고 한편 걱정도 되었다. 갈등 부분에 이르면 도망치는 버릇이 있는 나의 성향 상 아우슈비츠는 마주하기가 힘겨운 장소가 될 것 같아서였다.

 정오 무렵 무표정한 폴란드 노년의 여자가 현지 가이드로 동행했다. 안내 도중 그녀가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사진 찍지 말라했는데 사진을 찍었다고 중학생 아들과 같이 온 엄마에게 심한 면박을 주었다. 우리는 그 뭐 대단한 거라고 하는 표정으로 철조망 안 바라크를 돌아보았다. 몇 그루 플라타너스만 바람결에 나부낄 뿐 적막에 휩싸인 아우슈비츠는 냉랭하고 참담했다. 여러 기록 사진과 현장을 보았지만, 가급적 많이 본 것이 아니라 가급적 적게 보고 웬만하면 외면하며 걸었다. 지하의 축축한 벽에서 약품냄새도 나고 피부도 따끔거렸다. 슬픈 역사의 현장, 동류의 아픔이 온몸으로 퍼졌다.

 버스를 타고 여자들만 따로 수용했었다는 철로 옆 수용소로 갔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밖에 나와 가이드에게 물었다. 이 따끔거리는 증상은 언제쯤 가시느냐고. 그는 한참 나를 보더니 예민하신가 봐요 라고 하였다. 나는 많이 당혹스러웠다.

 그날 밤 호텔에서 아들과 같이 온 엄마의 불평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일류 호텔이라더니 물도 안 나오고 불도 안 켜진 이런 델 오냐고. 그 집 아들이 어머니를 달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수도 있지 했는데 아침 식탁에서 그녀는 소곤거리며 말해주었다. 아우슈비츠의 사진은 검게 나왔고, 카메라는 작동 되지 않는다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아침 일찍 어부의 성에 올랐다. 호텔이 어부의 성 곁에 있어서 햇빛 찬란한 도나우 강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데, 영주에서 혼자 온 미술선생님이 자신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기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러마고 했더니 그제야 고백을 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자신도 사진을 찍었는데 역시 검게 나왔고, 사진기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나는 감전된 듯 그 자리에 서 버렸다.

 귀신은 있는가. 이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나는 침묵한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일련의 일들도 내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의 사진은 정말 우연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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