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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새로운 에너지 정책의 시험장이 된 울산이 에너지 분야에서 적폐청산의 대상이 된 듯하다. 지난 달 24일 출범한 공론화위원회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이 있는 울산을 찾았다. 물론 지역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사전 조율이나 현장에 대한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울산 신고리 현장을 찾은 공론화위원회는 공사 중단을 반대하는 서생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방문 일정에 차질을 빚는 등 진통에 시달렸다. 이번 울산 방문에는 공론화위원회 김지형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 7명, 위원단장 등 7명이 울산을 찾았다. 이들을 태운 버스는 28일 오전 11시께 새울원자력 본부 정문에 도착했다. 예정대로라면 이 시각 한수원 관계자와 만남을 가졌어야 했지만 정문을 막아선 서생 주민 100여 명이 저지에 나서면서 위원들의 발목을 묶었다. 주민들은 원전 건설 중단을 반대하는 내용이 적힌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새울본부 진입로 2개 차로를 점거해 "법적 근거 없는 공론화위원회를 인정할 수 없다"고 격하게 외쳤다. 양 측의 대치는 30여 분 간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일부 주민들은 버스 앞에 드러누워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결국 공론화위 위원들은 버스에서 내려 걸어서 새울본부로 들어가는 것으로 주민들과의 마찰은 일단락 됐다. 하지만 반발이 격화된 탓에 당초 이날 공론화위가 계획했던 건설 중단을 반대하는 주민측과의 간담회는 결국 무산됐다. 이날 오후 서생면사무소로 예정됐던 원전 건설 중단 찬성단체와의 간담회 장소도 울산 KTX역으로 변경됐다. 범군민대책위 이상대 위원장은 "주민이 요구한 5가지 사항에 대한 답변이 선행되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5가지 요구사항은 △공론화 기간에 탈원전 정책 불가 △여론조사 투명성 보장 △원전 5㎞ 내 주민 시민참여단 30% 이상 참여 △충분한 홍보활동 보장 △공론화위 직접 주민의견 수렴절차 진행 등이다.


 우여곡절 끝에 공론화위는 김형섭 새울본부장으로부터 신고리 5·6호기를 비롯한 원전 전체 상황을 보고받았다. 김 본부장은 "현재 건설하는 원전은 후쿠시마 원전과 그 구조가 달라 사고를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며 "한수원은 곧 구성될 시민참여단들도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형 위원장은 "공론화 절차를 진행하는 데 있어 현장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번 일정을 잡게 됐다"며 "공론화위는 앞으로 얻어낸 정보를 최대한 가다듬고 활용해 시민참여단이 올바른 최종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공론화위는 신고리 5·6호기 현장을 둘러본 후 비공개로 현재 가동 중인 신고리 3호기를 방문해 터빈 건물 등 주요 설비를 확인했다.


 울산을 떠나기에 앞서 KTX울산역 회의실에서 건설 중단을 찬성하는 환경단체 및 주민들과 만남을 가졌다. 건설 중단을 찬성하는 이들은 "신고리 5·6호기는 안전성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 공론화위의 울산방문은 주민들간 갈등을 부추기고 지역 여론을 또다시 두쪽으로 갈라놓는 부정적인 면이 부각됐지만 의미도 있다. 무엇보다 공론화위가 찬성 쪽과 반대쪽의 극명한 의사를 확인한 셈이고 이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됐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 못지않게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 전반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 에너지를 어디에 중심을 둬야 하는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원전과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 거의 반세기를 살아온 사람들의 목소리가 왜 원전중단에 반대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탈원전에 중심을 둔 시민사회 단체의 핵심은 안전이다. 안전한 에너지가 어떤 문제보다 중심에 설 때 우리의 미래 에너지를 담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사회적 공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안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미 절차적 정당성을 가지고 정상적인 일정에 따라 추진되어온 신고리 건설이 정권이 바뀌는 순간 중단되는 일이 합당한가에 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 에너지 정책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정책 결정에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다. 절차적 합리성과 과정의 적법성을 고려한 결정인지, 아니면 과거정부의 적폐청산과 궤를 같이하는 여론몰이식 청산과정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점이다.


 주민들이 공론화위에 극렬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지난 반세기 동안 주민들이 당한 소외감은 도외시 한 채 일방적인 공사중단 결정에 대한 반감이다. 만신창이가 된 고향 땅에 원전을 유치하기로 한 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는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공사중단과 여론조사라는 전대미문의 결정방식에 쉽게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미래를 위한 정책 결정은 여론조사보다 심도 있고 객관적이면 공정한 절차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 방법을 도출하는 과정이 투명하고 공감을 얻은 다음에라야 중단을 논의하고 공론화를 논의할 수 있다는 여론이 지역에서 왜 나오고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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