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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송은숙 시인
2017년 10월 12일 (목) 19:02:15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요즘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의 호미가 인기 있는 농기구라고 한다. 아마존닷컴에는 호미가 한국의 5배 이상 가격에 올라와있고, 상품평도 '최고의 정원 도구' '소박한 구조이지만 기능적이다.'와 같은 호평이 많다고 한다. 농기구계의 한류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호미를 사용하는 외국인은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본 기억이 없다. 우리가 호미로 할 수 있는 일들, 풀을 매거나, 작은 고랑을 내고 북을 돋우는 일 등을 저들은 무엇으로 한단 말인가. 정원을 가꾸는 모종삽으로 한다는 말이 있던데 그 효율성이 호미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호미는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농기구다 싶어 추석에 시댁에 내려갔을 때는 처마 밑에 둔 호미를 자세히 살피고, 손에 쥐고 풀도 매었다. 손안에 뿌듯이 호미 자루의 감촉을 느끼며 호미의 여러 가지 미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호미의 미덕 중 으뜸은 그 정갈한 생김새일 것이다. 호미는 모양이 예쁘다. 손에 쥐고 땅 가까이에서 사용하는 농기구로는 낫과 호미를 들 수 있겠는데, 그중 '예쁘다'란 말이 어울리는 것은 호미가 아닐까한다. 낫은 그 날의 매끄러움과 서늘한 날카로움으로 멋지지만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면, 호미는 손안에 딱 맞게 잡혀서 가볍고 익숙하며 편안한 느낌을 준다. 호미의 모양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삼각형의 날과 손잡이인 자루를 슴베가 이어주는  단순한 농기구이다. 호미의 슴베는 자루에서 가늘고 곧게 뻗어가다 날이 펼쳐지는 부분에서 왜가리나 두루미의 목처럼 부드럽고 둥글게 한번 휘어지는데 이게 영락없는 물음표 모양이다. 고민하고 사색하는 모양새의 농기구인 셈이다. 호미의 날은 어떤가. 슴베의 끝에서 둥글게, 넓게 펼쳐지던 날은 휘돌아 꺾이면서 끝이 뾰족하고 날카롭게 마무리된다.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고 실용적이면서도 그 휘어지고 펼쳐지는 품이 미적 쾌감을 준다.

 호미는 쓰임새가 다양하다. 뾰족한 끝은 풀을 매거나 고구마나 감자 등을 캘 때 유용하고 넓은 날은 풀이나 흙이 새는 것을 막아주어 일의 능률을 높인다. 넓적한 날등으론 뽑기 어려운 작은 풀을 문질러 없애고 흙을 고르며, 호미 두 개를 이용해 풀 더미를 운반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땅 속의 것을 캐내거나, 구덩이를 파거나, 북을 돋우거나, 고랑을 만들거나, 흙을 고르거나, 무언가를 옮길 때 호미 한 자루면 너끈히 그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괭이나 삽, 곡괭이, 쇠스랑, 갈퀴, 가래 등의 역할을 호미가 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농부들, 특히 아낙네들은 호미 한 자루만 들고 밭에 나가도 하루 종일 일을 할 수 있다. 몇 해 전 지인들끼리 어울려 근교의 텃밭을 가꾼 적이 있는데 그때 마련한 농기구도 호미 몇 자루뿐이다. 감자, 상추, 고추, 오이 등을 심었는데, 근처의 농군이 땅을 갈아준 뒤론 호미 하나로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일을 다 할 수 있었다. 텃밭 만든 걸 기념해 밭 둘레에 자기 몫의 어린 나무를 심는 일도 호미 한 자루로 가능했다. 호미야말로 맥가이버칼처럼 천의 얼굴을 한 다용도 연장인 셈이다.   무엇보다 호미는 땅과 가장 밀착된 농기구이다. 외국에서 호미 같은 농기구가 발달하지 않은 것은 땅이 넓고 기름져 자루가 긴 농기구로 서서 일하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곳 농부들이 긴 자루가 달린 낫으로 서서 낫질을 할 때 풀이나 곡식은 풀썩풀썩 쓸려 넘어진다. 편리하지만 땅 그 자체를 가까이 느끼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 땅은 좁고 비탈지며 척박한 편이다. 돌은 많고 물기는 적다. 이런 땅에 적합한 농기구로는 호미만한 것이 없다. 우리는 땅에 엎드려 낫질이나 호미질을 한다. 풀이나 곡식을 붙잡고 안으로 당기며 벤다. 땅에 깊숙이 박힌 풀뿌리를 후벼 파고 돌을 고르며 흙덩이를 부순다. 땅을 만지며 일을 하니 그 냄새, 색깔, 질감, 알갱이의 크기, 영양 상태, 건습의 정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지렁이나 땅강아지를 만나기도 한다. 호미의 날 끝은 지렁이를 피할 수 있다. 날 끝이 섬세해서 옆에 있는 다른 작물을 해치지도 않는다. 흙의 유실도 적다. 자연을 가장 가까이 느끼고 이해하며, 덜 해치는 친환경적인 농기구인 것이다.   

 이런 호미가 그동안 제초제에 밀려 사라지다가 이제 외국에서 호평을 받는다니 정말 반가운 일이다. 외국뿐인가. 경쟁에 치여 심신이 지친 현대인들이 이제는 힐링이니 슬로우 라이프니 하면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늘고 있는데, 이때 가장 선호하는 일이 정원이나 텃밭 가꾸기이다. 도시농부란 신조어도 생겼고, 지자체에서 도시농부학교를 운영하기도 한다. 자연과 흙에 대한 관심이 늘어감에 따라 호미를 찾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호미. 이름도 참 좋다. 양성모음과 중성모음이 부드럽게 이어져 마치 휘파람을 부는 것 같은 발음. 훈훈하고 미쁘다.

 비록 아파트 생활이지만 나도 호미를 하나쯤 장만하고 싶다. 시중에서 흔히 파는 플라스틱 자루가 아닌 단단한 나무 자루가 달린 호미. 가능하다면 공장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대장간의 뜨거운 불 속에서 정성들여 벼려진 정갈하게 생긴 호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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