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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대 울주군 여성가족과장

생각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이럴 때는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아야 한다. 책은 가볍지 않고, 무겁지도 않은 책이어야 한다. 그런 기준으로 선택한 책이 김훈 산문『라면을 끓이며』이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모두가 라면에 대한 아름답고, 허기진 배고픔이 있을 것이며, 그 속에 보고픈 친구들이 아스라이 떠오를 것이다. 
 나는 라면에 대한 추억이 있는 세대이다. 60년대 라면이 처음 나왔지만 정작 라면을 만난 것은 70년대 초반으로 중학생이었다. 그때를 생각해보니 까까머리 친구들은 부모님께 참고서를 산다고 돈을 받아서, 또는 집에서 가지고 온 쌀을 라면과 바꾸어 밤에 친구의 자취방에 모여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라면이 모자라면 국수를 같이 넣어서 먹었는데 서로가 곱슬곱슬한 면발만을 먼저 골라 먹으려고 치열한 젓가락 싸움을 했다. 그 맛을 잊지 못한다. 그 책은 지나간 먼 시간을 돌아보게 했다.

 책은『밥』,『돈』,『몸』,『길』,『글』로 5부 53편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산문은 제목처럼 한 단어로 누구나가 쉽게 알고 있는 단어이며 친숙한 주제로 그의 장점인 간명한 문체로 쉽게 썼지만 누구나가 쉽게 읽기는 어려워 다독(多讀)보다는 정독(精讀)을 해야 한다. 높은 산을 오를 때면 산소의 결핍으로 천천히 정상을 향해 가듯이 이 책 또한 한 문장을 읽고는 잠시 쉬어 그 뜻이 무엇인지를 씹어보아야 한다. 그래야만이 작가가 말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다. 
 1부『밥』에서'라면을 끓이며'는 라면을 통해 다른 음식들과의 비교를 해서 라면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라면은 혼자서 시장기를 급히 때워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음식이다. 이 끼니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먹는 것으로 밥과는 다르다. 이는 사람은 누구나가 먹는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변하지 않았음을 이야기 한다. 

 라면은 우리가 오래전부터 먹어온 국수처럼 국물도 있고, 또 뜨거워서 호호 불어서 혼자 먹어도 크게 외롭지 않을뿐더러, 조리가 간편하고 빨리 먹을 수 있는 것이 그 또한 가까이 할 수 있는 매력이다. 이런 매력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라면에 대한 추억이 많다. 특히 군대를 다녀온 이들에게 군에서 먹은 라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몇 밤을 지새워야 할 것이다.
 군대는 겨울이 시작되면 추운 겨울을 날 준비를 하지만 그 중에서도 따뜻한 내무반을 만들기 위해 빼치카를 준비한다. 그 준비는 조개탄과 빼당이다. 빼당은 빼치카를 지키는 병사로 보통은 상병고참이 한다. 그 겨울 빼당의 얼굴은 보기가 쉽지 않다. 빼당의 중요한 임무는 내무반의 따뜻한 온기를 유지하는 것이지만, 틈틈이 고참들에게 맛있는 라면을 상납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다. 물론 졸병들은 빼치카에서 끓인 라면을 맛보는 게 추운 겨울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라면의 생명은 면발이 불지 않고 탱탱해서 고무줄처럼 탄력이 있어야 한다. 면이 불면 국물 맛도 좋지 않다. 군에서는 주말이면 라면을 특식으로 주었다. 보람찬 하루 일을 시작하는 주말아침에 먹는 라면, 퉁퉁 불어서 떡라면이 된 라면은 국물은 아예 없고 젓가락으로 먹기가 힘들어 숟가락으로 잘라 먹는데 라면을 먹기가 고역이었다. 그런 라면을 먹다가 가끔 빼치카에서 군용반합에 끓인 꼬들꼬들하고 따뜻한 국물이 있는 라면을 먹는 그 기분은 먹어본 이들만 알 것이다. 그러나 빼치카의 추억도 봄이 오면 사라졌다 겨울이 오면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겨울을 세 번 만나야 제대를 하게 된다. 그 맛을 기억하는 이들은 혼자서 종종 꼬들꼬들한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외로움을 견딘다.    

 『라면을 끓이며』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숨어 있는 아픈 상처를 잊지 못하게 한다. 임진왜란 때 임금은 압록강까지 쫓겨와서 "우리 땅이 다 끝났으니,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하며 통곡을 했으며, 세월호에서는 우리들의 분노, 그 끝없는 슬픔을 이야기 하며 여전히 세월호의 고통은 진행형(ing)임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 땅의 그 누구도 세월호의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회 곳곳에서는 또 다른 세월호가 진행 중이다. 이를 어쩔 것인가. 혼자서 라면을 끓이다가 나의 상처를 되돌아본다.
 또, 가을이 왔다. 아픔 상처를 가슴에 묻지 않기 위해서 부디 아프지 말아야지 하고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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