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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한주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 금융 시스템 전체를 쥐락펴락했다. 급기야 부시 행정부가 금융기관들의 부실 채권 정리를 위해 7천억 달러의 구제금융 재원을 승인해 달라고 의회에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금융 위기는 우리에게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마치 미국이 이끄는 열차의 객차 같은 우리 경제는 고장 난 조정실을 외면한 채 객차를 끊어버리고 싶지만 혼자서는 객차를 조정할 방법이 없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IMF와 같은 최악의 상황까지 영향을 받진 않을 것이라는 다소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전망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위기가 대기업 보다는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다. 대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된 IMF와는 달리 우리 경제의 기초격인 중기의 줄도산이 예상된다는 이야기다.

 

 지난 1997년 IMF사태는 길게 보면 과거 30여 년간 고도 압축성장의 폐해에 따른 고비용 저효율구조와 '대마불사'라는 안이한 정경 지도부의 탁상논리가 빚은 국가부도 사태였다. 여신심사를 철저히 하지 않은 금융기관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실채권 앞에 속수무책이었고 정부는 정부대로 패닉현상에 빠져 나자빠졌다. 미국발 금융위기처럼 당시에도 한보와 기아, 삼미, 해태 등 대기업 퇴출이 우리 경제의 난기류를 예고했지만 김영삼 정부의 경제팀은 내부적인 갈등과 방향착오로 결국 최악의 사태를 맞은 바 있다. 당시 우리의 경우 대우 쌍용 한라 동아 등 30대 기업집단 가운데 16개가 퇴출되거나 경영주체가 변경됐고 156조라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미국의 금융위기도 돌발변수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에 어느 정도 충격파에 따른 예방접종을 해둔 상태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이번 공적자금 투입 결정은 예방주사만으로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는 사실상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모토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이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를 지향해온 우리나라의 경우 어떤 식으로든 미국식 규제의 그물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다.

 

 '세계대통령'을 지향했던 레이건 행정부의 등장 이후 미국은 규제 완화와 감세 등 '작은 정부와 큰 시장'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특히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개입은 금기로 여겨 왔다. 문제는 '레이거노믹스'로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물결이 한국의 IMF와 미국의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이른바 대기업이나 금융그룹들의 도덕적 해이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결과가 됐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의 시스템 하에서 대기업이나 금융그룹들은 장사가 잘될 때는 정부 개입을 거부하고, 위기가 닥치면 정부에 손을 벌리는 '위선'을 보였다. 정부 역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들의 위선에 '면죄부'를 줬고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중소기업이 떠안아야 했다.

 

 가뜩이나 내수침체로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의 중소기업들은 미국발 금융위기로 자금사정이 경색되자 발을 구르고 있다. 부실로 먹고산 우리나라 시중은행들이 만만한 중소기업을 상대로 대출 심사를 더욱 강화하기에 이르렀고 자금난에 대출규제까지 겹쳐 중기들은 자구책마련을 위해 그야말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특히 원·달러 환율의 고공행진이 이어짐에 따라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도산 위기에 처한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가속화된 외환 유동성 경색이 국내 원화 유동성 경색으로 번질 조짐이 나타나는 점이다. 이는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사들을 비롯한 중소기업에 직격탄이 된다. 금리가 지속적으로 오르면 가계부채 부담이 늘어나기 마련이고 투자위축과 소비침체는 예정된 시나리오다.

 

 울산의 경우 지속적인 경기하락에도 불구하고 수출시장의 다변화와 자동차 조선의 약진으로 우리 경제의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왔다. 문제는 울산도 세계 경제에 불어 닥친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울산지역 무역수지는 임금협상 장기화에 따른 현대자동차의 생산차질과 미국발 금융위기와 같은 외부 악재까지 겹치면서 6개월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위기감이 현실화되고 있지만 아직 시민들의 위기 체감도는 뜨겁지 않다. 체감 위기가 낮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상당기간 지속된 흑자 행진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 소득 4만 달러'라는 성과물이 그것이다. 두 가지 모두 심리적으로는 시민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하지만 실체 없는 심리적 효과는 '풍선효과'로 번져 어느 순간 공중에서 터져버릴지 모른다. 현대자동차가 보여주듯 심리적 불패의식은 세계시장의 흐름조차 부정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풍선만 불어대다 탈진하는 미래가 올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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