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을 달며
등을 달며
  • 울산신문
  • 승인 2017.11.3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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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연 수필가

늦은 시간에 통도사로 향했다. 다급함 때문인지 차는 번번이 제 속도를 초과했다. 싸늘한 잿빛 하늘이 내 마음 같았다. 매표소 창구에 다다르자 일곱 시까지만 나오면 된다니 조금은 여유가 있었다. 서두른 보람이다. 입구에서 사찰까지는 자동차로 제법 들어갔다. 오래전 지인과 한 번 다녀 간 터라 조금은 낯설었다. 지척에 주차장을 두고도 지나쳤다가 되돌아 나오기를 반복하고 나니 해는 더 빨리 기우는 것 같아 마음이 급해졌다. 

 종무소를 찾았다. 다른 사찰에 비해 절의 규모만큼이나 종무소 내부도 넓었다. 노인 몇이 창가에 굽은 등을 기대고 앉아서 도란거리고 있다. 그 모습이 평온해 보였다. 철학관에서 받아온 아이의 이름과 등록할 내용들을 적은 메모지를 접수처에 건넸다. 접수는 간단하게 끝났다. 며칠 있으면 아들을 위한 등이 달린다고 한다. 그런데도 나는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쁘게 올 때와는 달리 홀가분한 것 같기도 하나 짧고 간단한 절차가 허탈한 생각이 들었다. 내 정성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체 나는 무슨 기대와 마음으로 사찰을 찾았던 것일까? 종무소를 나섰다.

 사찰에 등을 밝힌 것이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 아들이 혹독하게 겪은 사춘기를 벗어날 무렵 잠깐 머무르게 된 작은 절에 인연이 되어서다. 이번에도 집에서 독립을 하겠다는 아들이 집을 보러 다니는 과정에서 아들에게 등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알면 병이고 모르면 약이라는 말이 있다. 결국 들었기 때문에 내 마음 편하게 하려고 등을 달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나의 속된 민낯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머니도 그랬던 것 같다. 당신의 세대에는 대부분 한 해를 시작하면 신수를 보는 집들이 많았는데도 당신이 신수를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한 해 신수를 봤다거나 절에  등을 달았다고 하면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나무라기도 했다. 당신의 신조는 그런 것을 본다고 사는 것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 모를까마는 해가 바뀔 때도 비록  1년 신수나 점집을 찾지 않아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새벽 시간에 가장 먼저 우물에서 물을 길어온다. 마을 사람 누구도 물을 길어가기 전에 비닐에 정성들여 싸두었던 신발을 조심히 꺼내 신고 사뿐 사뿐 우물로 간다. 깨끗한 물을 길어와 부엌 아궁이 부뚜막에 놓인 대접에 붓고 절을 한다. 어쩌다 선잠을 깨고 들어보면 모두 자식에 대한 기도였다. 타국에 있는 아들들의 무사함을 빌었다. 자식들과 떨어져 살았던 때나 한 곳에 적을 두고 다시 가족이 모였을 때도 어머니의 안중에는 자식들이 전부였다. 내가 아들을 위해 등을 달 듯 어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당신만의 방법으로 치성을 드리는 것이다.

 경내를 돌았다. 고목의 가지들은 서둘러 오래된 나뭇잎을 내려놓고 있다. 모두 껴안고 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았다. 살붙이처럼 달고 살던 것들도 과감히 내려놓아야 하는데 나는 아직은 쉽지 않다. 역마살이 있는지 아들은 혼기가 차지 않았는데도 독립하려고 애쓰고 나는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혹자는 반대로 자의든 타의든 여러 가지 문제로 부모 밑에서 더부살이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부모 발목 붙잡고 사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제 스스로 살아가려고 하니 다행이라 여기고 빨리 보내라고도 한다.

 왜 그래야 되는 지를 내가 모를까, 그러나 아직은 혼자 살아가게 하기는 늘 불안하다.  이런 내 마음은 기우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가족들과 부대끼며 살지 못한 내 유년의 기억 탓도 있다. 나는 늘 사람이 그득한 것이 좋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람 냄새가 나는 것이 좋다. 집은 좀 번잡스럽고 정신없이 정돈되지 않아도 사람들이 머물러야 집이라고 여긴다. 빈집처럼 늘 정돈되어 있고 사람 소리보다 바람 소리가 더 많이 나던 집이 싫었다.

 경내를 돌아 나오며 기도를 했다. 내 기도도 어머니의 것과 닮아있었다 언제나 소망은 많은데 무탈 만을 위한 기도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내게 더 큰 간절함은 가족이라는 둥근 밥상에 모여 날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밥을 먹는 것이다. 오래도록 혼자서 밥을 먹어 본 사람은 안다. 그런 것 같았다. 독립하려는 아들을 쉽게 보내주지 못함은 같이 밥 먹을 수 없음을 두려워 한 것 같다.   

 해가 이미 산속으로 파고든지 오래다. 기도와 바람의 경계를 허물듯 멀리 있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가뭇하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고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난다고 하지 않는가. 아들을 독립시키는 일은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다. 홀로서기를 하려는 아들을 이제는 조금씩 나의 품에서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겠다. 기꺼이 격려를 보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위로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되짚어 나오는 길은 완전한 어둠으로 쌓였다. 어차피 사람은 혼자 왔다가 혼자 떠나는 것이고 누구나 제 삶을 살아야 한다. 소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아들이 언제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기도를 한다. 소박한 나의 행복을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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