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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 서영은 작가의 『먼 그대』(1983)를 읽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해마다 출판되는 이상문학상 수상집이 나오기만 하면 빠짐없이 사서 읽곤 했다. 그해 『먼 그대』를 처음 읽었을 때의 전율은 아직도 생생하다.

어떻게 이런 캐릭터를 그려낼 수 있었을까 하고 감탄하면서도 그 나른함에 취해 꽤 오랫동안 『먼 그대』를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그 후 서영은 작가의 작품을 모조리 찾아서 읽고 나서, 열렬한 팬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마음 속에도 낙타 한 마리가 자라나,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막을 건너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먼 그대』를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졌다. 20대에 읽었던 소설을 지금 다시 읽어보면 그 느낌이 어떨지 궁금했다. 드디어 지난주에 약 30여 년 만에 『먼 그대』를 다시 읽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문자를 다시 만난 느낌은 여전히 실감적이고 나른하다.

문자는 출판사에서 10년 이상 교정일을 도맡아 해 온 30대 후반 노처녀다. 10년 이상 출판사에서 근무했으면 아무리 월급이 적다하더라도 어느 정도 돈도 모였을 테고, 생활도 조금은 윤택해졌을 거다.

그러나 문자의 차림은 소매 끝이 닳아빠진 외투며, 여름도 겨울도 구분 없이 신어온 쫄쫄이식 단화, 통은 넓고 기장은 짧아 발목이 껑뚱해 보이는 쥐똥색 바지 등을 1년 내내 입고 다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주위 사람들은 문자의 차림새를 보고 측은해 보인다느니 하면서 말들이 많다.

이에 비해 문자는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따위는 조금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 게다가 부당한 일을 당해도, "그래, 내게 가져갈 것이 있으면 다 가져가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뿐만이 아니라, 유부남 한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빼앗길 때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한수는 문자를 계속 자기 옆에 두기 위해 아이를 본부인한테 키우라고 데리고 갔다. 한수는 자신의 사업이 잘 나갈 때에도 문자에게 그 흔한 구리반지 하나 선물하지 않았다. 어디 그뿐이랴. 한수는 사업에 실패하고 나서는 문자에게 돈 까지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문자는 단 한 번도 한수의 부탁을 거절한 적이 없었으며, 단 한 번도 한수한테 무언가를 요구한 적이 없다. 문자에게 있어서 한수는 사랑하는 한 남자가 아니라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시련이며,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 그 자체였다. 어느새 문자의 하루하루는 주는 것에 익숙한 삶이 되어 버렸다.

인간이라면 부당한 요구에 직면하게 되면 누구나 화를 내게 마련이다. 그러나 문자는 그러한 어려움을 꾹 참고 이겨낸다. 즉 문자가 싸우는 방식은 '인내'인 것이다. 비굴함이 없는 인내, 그것은 오히려 절대긍정에서 오는 자신감의 표출이라고 하고 싶다.

문자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놓이더라도 그 어려움을 빛이 나는 긍정으로 바꾸어 버린다. 이러한 문자의 긍정은 내 삶을 뒤돌아보게 한다. 아니 20대에 만난 문자에게 나는 이미 문자의 인내와 긍정을 몸에 익혔는지도 모른다.

지금 50대에 다시 만난 문자에게서 나는 보살의 모습을 보았다. 문자는 일요일 밤마다 찾아오는 한수를 만나 억겁의 마음을 닦아, 순간순간 그녀의 마음에 빛이 차올라 그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금빛으로 물들게 했다. 누군가의 옆에 있기만 해도 빛나는 존재, 함께 있기만 해도 빛나는 존재가 문자였던 것이다.

에피소드로 담겨있는 리비아 여행기가 아직도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국민소득과 인구가 적은 리비아에서는 인구를 늘리는 정책을 펴는 한편, 사막의 오지에 사는 사람들을 도시로 끌어내기 위해 돈다발로 유혹을 했다. 리비아 정부는 푹신한 양탄자와 에어컨 장치가 있고, 안락한 침대에 꼭지만 틀면 수돗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집에서 편안히 살게 해 줄 테니 도시로 나오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사막에서 살아온 유목민의 상당수가 그 유혹을 뿌리치고 도시와 멀어져갔다. 그들은 갈증과 더위로 살아내기 힘든 사막 속으로 스스로 들어간 것이다.

리비아에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 같은 지도가 있다고 한다. 그 지도에는 사막 어딘가에 땅 속 깊은 곳으로 흐르는 푸른 물길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그들은 이 길을 신(神)의 길이라고 불렀다. 사막의 오지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들만은 이 푸른 물길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한다.

문자가 소설 속에서도 계속 나이를 먹었다면 지금은 60대 후반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은 60대 후반이 되었을 문자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10년 후의 내 모습도 그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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