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울

조동화

산이 가슴으로 쓴 살가운 두루마리
길짐승 날짐승들 마른 목 추겨주며
운명의 한 길을 따라
콧노래로 가고 있다 

길섶의 풀뿌리며 돌 밑의 미물들까지
때마다 기다리는 생명의 소식이거니
춥다고 그만 두겠나,
밤이라고 안 가겠나

먼저 간 선발대들 얼음장 되어 쌓이고
얼마간은 낭떠러지 고드름으로 달려도
낮은 곳, 낮은 곳 향해
배밀이로 가고 있다

▲ 조동화 시인: 1948년 구미 출생. 중앙일보 조선일보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으로 '낙화암' '산성리에서' '강은 그림자가 없다' '눈 내리는 밤' '영원을 꿈꾸다' '나 하나 꽃 피어' 등 중앙시조 대상 신인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유심작품상. 통영문학상 등 현재 경주침례교회 담임 목사
 

이서원 시인
이서원 시인

시는 이미지인 동시에 상상력의 묘사로 이루어진 창조물이다. 그러기에 많은 이들이 자연을 벗 삼아 함께 노래하며 찬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울물이 흐르는 것을 산이 풀어 놓은 두루마리로 보는 노(老) 시인의 눈에서 천진스런 아이의 마음을 만나게 된다. 여울물은 졸졸졸 산 개울로 흘러 뭇짐승들의 목을 추겨주기도 하고, 또 제 생의 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며 유유자적 가고 있는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선지자적 구도의 길을 떠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물은 모든 생명체를 품는 넓은 포용의 덕을 지니고 있기에 길섶의 풀뿌리들, 돌 밑의 미물들조차 가리지 않는다. 그것이 사랑이고 온유의 마음이리라.
중국의 삼황오제 전설의 시대 곤은 흙을 덮어 홍수를 막으려고 했지만 끝끝내 물길을 다스리지 못하고 우산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뒤이어 우(禹)는 아버지의 실패를 거울삼아 흐르는 물은 흘러가게 하는 방법을 택하여 마침내 자연에 순응하는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물은 이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는 속성을 따라 그렇게 가는 것이다.


새해가 되었다. 순응하는 법을 배우고 동화되는 이치를 깨달아 우리 삶이 여울처럼 모든 이들을 넉넉하게 품는 시인의 마법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세상은 한층 유순해지고 윤슬처럼 반짝이게 될 것임을 믿기에 오늘의 얼음장도, 낭떠러지도, 고드름도 넉넉하게 견디며 먼 노정을 떠날 수 있다. 이서원 시인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