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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 앉아 해지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전깃줄에 새들이 줄줄이 앉아있고, 딱지치기를 하다 집으로 달려가는 친구들, 주인을 기다리는 자전거, 그리고 먹을 것이 없나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길냥이…….
여기 골목길을 아주 사랑하는 시인이 있어요. 서울 도심에 살면서 골목길이 하는 얘기를 귀담아 듣고 사랑의 소리를 전하는 쉼을 주는 의자 같은 분입니다. 선생님은 지친 삶에 맑은 샘물 같은 시를 쓰는 분입니다. 이 선생님 모습을 직접 뵌 적은 아마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제가 '시와 시학'이라는 잡지에 신인문학상이 당선되어 시상식에 갔지요. 그곳에서 '흙 묻은 손'이라는 작품으로 문학상을 받으셨어요. 하얀 모시옷을 입고 오셨던 것으로 기억 됩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선비 같은 청렴한 모습이었어요.


특히 이번에 소개할 '쥐눈이콩은 기죽지 않아'엔 골목길의 시인답게, 47편의 동시 가운데 11편의 시에 골목길이 등장해요. 눈사람을 만들고, 책을 읽고, 달리고, 줄넘기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딱지치기를 하는 이런 골목길의 모습이 담긴 시들을 볼 수 있어요. 동심을 고스란히 담은 동시집을 만나 참 행복해요.
아이들의 맑은 숨결이 마치 물결에 파닥이는 송사리처럼 느껴지는 이 동시집은 소박하지만, 화목하게 살아가는 건강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요. 재밌는 이야기들이 골목길처럼 꼬불꼬불 이어지고 신나는 이야기들이 완두콩 덩굴손처럼 마음을 간질간질 감고 오르는 곳, 큰길부터 시작돼 집집까지 닿아 있는 골목길. 아침이면 꽃집과 구둣방이 문을 열고, 저녁이면 밥 짓는 냄새에 둘러싸여 밥 먹어라, 더 놀다 가, 소리가 울려 퍼지고, 노을이 바라다 보이는 계단에서는 아이가 책을 읽는 곳. 시인을 따라 골목을 탐방하다 보면, 동네에 깃들여 사는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요.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소리와 냄새, 다정한 체온을 구석구석 만날 수 있는 골목, 아이들은 이 골목에서 뛰어놀며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배우게 되지요. 이 동시집에는 골목이 품은 식구들과 더불어 지구가 품은 식구들, 그들이 내는 땀 한 방울의 힘이 느껴집니다. 시인은 조그마하고 보이지 않아도 또 다른 존재를 일으켜 세우고 숨 쉬게 하는 것들의 힘에 대해 이야기해요.
 

시인은 섬세한 눈으로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제 값을 받게 하지요. 그들이 지구를 떠받치는 힘이라는 것을 드러내요. 이 모든 것들이 내어주는 밥과 힘으로 아이들은 자라고 있어요. 작다고 기죽지 않고 가을이면 야무지게 튀어나오는 쥐눈이콩과 어떤 열매를 맺을까 골똘히 생각하는 단감나무의 힘을 아이들이 닮아가기를 바라며 동시집을 덮어요. 김이삭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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