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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황홀

김경성

어떤 나무는
절구통이 되고
또 다른 나무는 절구공이 되어
서로 몸을 짓찧으며 살아간다

몸을 내어주는 밑동이나
몸을 두드리는 우듬지나
제 속의 울림을 듣는 것은 똑같다

몸이 갈라지도록, 제 속이 더 깊게 파이도록
서로의 몸속을 아프게 드나든다

뒤섞인 물결무늬 절구통 가득히 넘실대며
절구공이 타고 흐른다

▲김경성 시인-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2011년 '미네르바'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와온'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가 있다. 2017년 세종 나눔 문학도서에 선정.
 

한영채 시인
한영채 시인

무술년이다. 신정 지나고 추위가 풀린 날 차 마실 가는 길, 어느 허름한 너와 집 담장 너머 왼쪽 귀퉁이에 낡은 절구통이 보인다. 어릴 적 집집마다 가을걷이 전 찐쌀을 빻거나 간단하게 집안에서 쓰이던 도구다. 요즘 민속박물관에서나 보게 될 드문 풍경이다.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지 낡고 흐무러져 있다. 그늘이 반쯤 가려 더욱 쓸쓸해 보인다. 구석의 따뜻한 시선이 김경성 시인의 따뜻한 황홀에 머문다.


어깨에 무거운 카메라를 매고 시어를 찾는 시인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다의성을 가진 시적나무는 절구가 되기도 하고 젓가락이 되기도 하고 책이 되기도 한다. 시의 속성은 따뜻함과 발견이다.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예리하게 오래된 나무에 머문다. 나무의 속성은 배려에 있다. 절구통과 절구공은 한 몸이다. 제 살이 파이도록 상처를 주고받는 절구, 사람도 마찬가지 상처를 주기도하고 받기도하며 배려하며 용서하며 다시 성장해 가는 것,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배려는 쓰임새이다. 시인은 나무로 만든 절구통과 절구공이 주고받는 대화가 올록볼록 에로틱하다.


낮과 밤 뿌리와 우듬지의 간극이 사물과 자연에 맞물려 있다. 옳고 그름이 조화로울 때 음양이 뒤섞여 평정이 되는 것, 당신과 내가 주고받은 말에도 상처이거나 용서이거나 울음이거나 깊은 감정이 올라올 때 울림이 될 때가 있다. 시의 서정은 맑은 감정을 끌어 올리는 치유의 속성도 갖는다. 물결무늬 절구통 가득히 넘실대는 절구공을 타고 흐르는 나무의 감정, 김경성 시인의 따뜻한 황홀로 무술년 한 해를 시작한다.
 한영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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