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치기 보수와 결별할 때다
얼치기 보수와 결별할 때다
  • 울산신문
  • 승인 2018.02.0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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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편집이사 겸 국장

보수가 무너졌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설자리를 잃었다. 이 말도 팩트체크를 해보면 보수가 설 자리를 잃은 것이 아니라 어정쩡한 보수, 보수의 껍데기만 쓴 보수가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게 정확하다. 딱하지만 우리 정치판의 보수는 얼치기 보수다. 그 얼치기가 이젠 아예 보수 시늉도 못내고 있다. 지방선거를 몇 달 앞두고 과거 보수 세력의 안방이던 지역에서는 연일 탄식의 소리가 땅을 꺼지게 한다. 문제는 얼치기 보수라는 이 땅의 보수들이 정말 제대로 된 보수의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냐는 점이다. 미안하지만 그런 모습은 없어 보인다. 보수의 옷은 입었지만 옷감은 붉게 물들었고 간간히 절대 버릴 수 없는 하얀 과거는 문신처럼 남긴 모양새다. 흔히 보수를 두고 도덕성과 준법성, 안정성을 기둥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보수는 세 가지 기둥을 잃어버렸다.

그 원죄는 해방 전후사까지 뒤져봐야 하고 어쩌면 조선 사대부의 기득권 쟁탈전으로 거슬러가야 할 지 모르지만 가까운 과거는 이명박 정부의 독점적 보수우파 정권론이 뿌리다. 턱도 없는 상대들과 가볍게 치른 대선 탓에 자신감이 분기탱천했던 이명박 정부는 정권초기부터 인사에서 분탕질을 거듭했다. 이른바 '강부자 내각'부터 '고소영 정권'까지 도덕성보다 주군의 눈도장을 찍은 순서로 보수를 인테리어 했다. 법치는 실종됐고 경제도 비틀거렸다. 그 당시만 해도 30세가 채 안된 애송이가 전면에 등장한 북한은 김일성 시대를 코스프레하며 세상을 향해 대찬 핵풍선을 불어재꼈지만, 북풍은 정권유지의 수단이 됐고 양치기 소년이 됐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시간 동안 그 애송이는 목청만 우렁찬 트럼프와 맞짱을 뜰 수준으로 자신을 포장했다.우스운 일이지만 세상은 이 이상한 구도를 엄청난 대결구도로 포장하는데 혈안이 됐고 어느듯 둘의 대결은 엄연한 현실이 됐다.

정체성이 모호한 얼치기 보수는 북풍 찬바람에 안방으로 내몰려 몸을 녹이는데 혈안이 된 상태다. 아랫목에서 엉덩이를 데우고 나른해지는 시간, 잡배들이 권력을 주무르고 이권을 나누다 찾아온 것이 박근혜 시대의 종말이지만 겨울이 되자 다시 안방에 모여드는 형국이다. 무너진 얼치기 보수가 이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드는 개헌 정국과 마주했다.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개헌 정국이지만 얼치기 보수와 삿대질 보수, 보릿자루같은 보수는 가능한 따듯한 아랫목을 비집고 이불 덮어쓰고 찬바람을 피하려고 안달이다. 아랫목에서 화투패를 뒤섞으며 광팔이와 피박 싸움에 열중인 꼴이 이 땅의 얼치기 보수다.

지난 주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새로운 권력구조로 하는 개헌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헌법 전문에는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시민혁명을 모두 넣기로 했다. 촛불의 역사적 규정을 시민혁명으로 대못을 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불과 1년여 전에 일어난 사건을 역사적 평가로 규정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대다수 의견이지만 촛불의 광채에 취한 정치는 귀를 열지 않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정책'을 '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정책'으로 고친다고 발표했다가 철회하는 소동을 빚었다. 헌법이 허용하는 사회민주주의를 전체주의적인 공산주의, 사회주의, 인민민주주의 등과 구별하기 위해 자유라는 단어가 꼭 필요하지만 슬쩍 빼고 가려하려다 덜미를 잡힌 셈이다. 무엇보다 현행 헌법의 가장 큰 폐단으로 지목된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 보는 것이 시급한 사안이지만 대통령 권한 분산은 어디에도 없다.

얼치기 보수가 무너진 배흘림기둥을 바라보며 탄식만 하는 사이에 개헌열차는 기적을 울리고 있다. 보수가 보수답지 못한 상황에서 무너진 보수만 이야기 할 장면이 아니다. 보수의 가치는 수구가 아니다. 아랫목을 파고들면 우선은 냉기를 피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불을 떼 주는 일꾼이 필요하다. 스스로 불을 떼고 아랫목을 데우는 보수는 건강하지만 고개 처박고 이리오너라를 외치는 보수는 불 떼는 이가 떠나면 냉방에서 얼어 죽기 마련이다. 지금 불을 뗄 일꾼들이 사라진 자리에 아랫목에 엉덩이만 붙이고 있는 꼴이 얼치기 보수다. 수구골통으로 몰리고 시대흐름을 읽지 못하는 '뒷방 늙은이'로 치부될까 싶은 보수는 아랫목만 파고들고 있다. 보수가 이 모양이니 목소리 큰 쪽이 대세처럼 보인다.

그래서 얼치기 보수를 두둔하는 일부 논객들은 "진정한 보수는 아랫목에 있지만 때가 되면 이불 박차고 대문 밖으로 나올 것"이란다. 천만의 말씀이다. 보수는 자신이 믿는 가치와 전통을 지켜가면서 개혁을 하려는 세력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다. 자신이 믿는 가치와 전통을 움켜쥐고 안방에 틀어박히는 것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골통이다. 세상과 마주하고 변화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보수가 진정한 보수다. 가치와 전통을 지키는 것은 신념으로만 되는 일은 아니다.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고 그 힘은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동성에 있다. 보수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실종된 대한민국에서 진정 보수의 가치를 지켜온 사람들은 무엇이 두려운지 눈알만 굴리고 있다.

문제는 그런 식의 보수라면 보수를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진보세력을 향해 허구헌날 종북좌파를 이야기하고, 숨어 있는 민심을 이야기하는 꼴은 딱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제대로 된 보수를 위한다면 얼치기 보수에 대한 양심선언부터 하고 껍데기가 아닌 속살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유월 남풍이 불 때 이 땅의 오래된 보수의 이름으로 깃발 한번 제대로 흔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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