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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하늘

백점례

새벽녘 물큰 터진 만 평의 울음이다

황망히 실려간 뒤 빗물에 번진 핏물

어젯밤 십이층에서 뛰어내린 꽃치마

벼랑으로 떠밀린 몸 받아 안은 허공 저편

무릎 꿇은 앞 바다의 이맛전도 뜨거워서

붉은 꽃 낭자한 터에 호곡하는 파도소리

△백점례 시인: 제1회 천강문학상 시조 대상, 매일신문 신춘문예(2011),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2015) 수상, 대산문학창작기금수혜(2017). 시집 '버선 한 척' 등 펴냄.

 

이서원 시인
이서원 시인

장엄한 해가 떠오르는 새벽 바다 앞에 서면 하루의 시작이 얼마나 깊고 숭고한가를 알게 된다. 저절로 마음이 경건해지고 삶의 경이를 느끼게 되는 것은 누구나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오늘 저 동해의 일출은 만 평 울음으로 시작을 알렸다. 울음은 우리의 오감 가운데 청각이지만 그 울음의 소리를 만 평의 넓이로 시각에 비유했으니 실로 그 바다가 더욱 크게 다가와 보인다.
일전에 연암 박지원은 청나라 연행 길에 처음으로 마주한 끝없는 요동벌판으로 보고 그 감격을 어찌할 바를 몰라 울음으로 비유했다. 그리고 그 울음을 다시 어린 아이가 태어날 때의 첫 울음에 견주었으니 그 사유가 실로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묘한 극치의 묘를 다 살린 일명 '호곡장'의 모습이 오늘 동해 바다에 펼쳐졌으니 저 붉은 하늘에 울음 한 번 크게 울어 주리라.


사람의 감정인 7정 가운데도 유독 슬픔에 울음을 배치하고 우리가 거기에 많은 사연을 담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늘의 시편에서도 요즘 사회적 문제로 학생들의 자살 이슈를 은근슬쩍 갖고 와서 꽃 치마에 비유하였으니 우리의 두 팔도, 그 허공도 받아 안지 못해 미어지는 슬픔을 누가 다 알겠나.
피어보지도 못하고 향기 한 번 세상에 날려 보내지도 못하고 붉은 꽃은 졌는데 바다의 저 붉은 울음이 유달리 그 아이의 실존의 결핍으로 보이는 건 왜인가.
이해와 관용과 용서보다 이기심과 배타적 사회가 키워낸 이 물질문명의 이데올로기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자꾸만 함께이기보다는 혼자서 노는 법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렇기에 대화와 타협보다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려가는 이중적 사회구조가 어제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른들은 대부분 일출을 보면서 희망을 노래하고 내일의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가겠다고 다짐하면서 새해가 되면 모두 동해로 몰려 수만 인파가 북적이지만 그 뒤에 내몰린 아이들의 고민과 아픔과 슬픔을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새삼 부끄러워진다. 
무릎 끓은 앞 바다의 가슴도 아프고 뜨거워서 더 세차게 파도는 쳤으리라. 그 파도 소리가 우리의 울음을 다 품고 더 크게 호곡(號哭)하고 있으니 붉은 꽃 낭자한 저 윤슬이 뜨겁고도 눈물겹다.
 이서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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