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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애신편에 이런 말이 있다. "나라의 법을 업신여기거나 가볍게 생각하고 법 밖에서 사사롭게 나라를 경영하는 것은 섶을 짊어지고 불을 끄겠다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이를 법이 있다는 뜻으로 유도라고 한다" 법은 있다. 법이 있기에 가지 말아야 할 곳인 감옥에 지체 높은 사람들이 들어가 있게 되었다. 영어의 몸이 된 처지에도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일이 종종 생겨나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

억울한 것이나 부당함이 있다면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있도록 법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민주국가이다. 그런데 지금 옥에 갇힌 그분은 그 현실을 부인한다. 정치보복을 위해 짜맞추기 수사로 뒤집어 씌우고 있다고도 항변한다. 소환이 되어 중앙지검 현관 앞에서 말을 아낀다고 하던 발언이 무색할 정도로 마구 말을 쏟아내면서 그것을 바깥으로 흘리기도 한다. 잘못된 점이 있다면 바르게 밝혀질 날이 오겠지 하면서도 우선은 그저 딱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흠집을 내는 것 같아서 나도 처연한 마음으로 이글을 쓰게 된다.

무술옥사를 연상하게 한다는 말과 천안함을 언급하는 모습이 바로 그런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무술옥사란 청나라 광서 24년(1899) 덕종 임금이 임명한 강유위 등 이 제안한 정책을 두고 이를 반대한 서태후의 수구파가 덕종임금을 유폐시킨 정변을 말하지만 이를 그분이 인용함은 무리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책을 놓고 당파싸움을 벌인 것이지 개인비리를 저질러 불행한 처지가 된 그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 개인비리가 온 가족을 불행하게 만든 사건을 다르게 포장한다면 이를 분간 못할 지금의 국민 수준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천안함 사건도 그렇다. 문 대통령이 김영철을 불려 들인 것이 아니란 것을 모르는 국민이 있을까? 북측이 결정해 제발로 걸어오지 않았는가? 또 설령 우리가 불러 들였다 해도 시기상으로 잘된 일이 아닌가? 그는 북미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사전조율을 하여야 할 인물로 꼽히고 있다. 더욱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있는 중이다. 행여 그 큰 국가의 대사에 재를 뿌리는 일이 될지 두렵다.
대통령을 지낸 큰 어르신에게 무례함이 되는 것 같아 이만 하려해도 머릿속을 파고드는 경구의 말이 끝없이 떠오른다. 그래서 더 쓰고 싶다. 그분은 분명 왕조시대가 아닌 법이 있어 유도인 나라에 어른의 위치에 있는 분이다. 나름대로 열렬하게 지지하는 층도 많을 것이라 여긴다. 법이 존재하는 곳에서…. 그러나 그 법은 만인에게 공평해야한다. 민족사에서 최대의 수치일 수밖에 없는 오늘의 비극을 자초한 두 분 전직 대통령이 새겼어야 했을 경구를 더 적는다.

임금의 근심거리는 남을 믿는데에 있다. 남을 믿으면 남에게 제압당한다. 신하는 핏줄이 이어진 육친의 관계가 아니다. 다만 임금의 위세에 얽매어 섬기지 않을 수 없을 뿐이다. 그래서 남의 신하가 된 자는 그 임금을 엿보기에 잠시도 쉴 사이가 없는데 임금은 태만하고 오만하게 그 위에 앉아 있다. 이런 마당에는 임금을 위협하고 시해하는 신하가 생기게 된다. 또한 임금이 아내와 아들을 지나치게 사랑하면 간신은 그 아내와 아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욕을 채우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엔 화를 있게 한다.

지극히 평범한 말이면서 지극히 번쩍이는 경구다. 돌아보면 우리는 헌정사에 찾을 수 없는 오점을 기록한 두 전직대통령에게서 허탈함을 느끼고 있다. 이 두분이야말로 섶을 짊어지고 불속으로 뛰어든 사람들이었다. 법을 업신여기거나 가볍게 여겼다. 유도가 아닌 길을 걷다가 비극을 부르고 만 우리의 지도자들이었다. 그러나 미워도 우리가 뽑았던 지도자들이었기에 그들을 마냥 미워하지 말자! 그분들도 한산섬 수루에 앉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처럼 나라 걱정으로 잠을 설친 적이 많았으리니.

한반도에 봄이 오려하고 있다. 민족의 유구한 역사에 우리가 그토록 갈구했던 그 진주같은  진실된 평화가 목전으로 꿰매질 찰나에 있다.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껴안는 유도 속의 국민이 되자! 통일된 자유번영의 삶을 누리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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