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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울림*

김종연

경마장 뒤흔드는 따발총 아나운서처럼
끝없이 쏟아낸 말 일상을 찢어 놓는다
또 다시 충혈 된 하루 밥도 잠도 반납이다

표정을 들켰다간 내일이 사라질거야
감긴 눈꺼풀은 어지러운 꿈을 달고
몽롱한 아침을 맞는다, 또다시 반복이다

*유령울림: 퇴근 후에도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메신저를 통한 업무지시 스트레스로 인한 환청 현상

△김종연: 나래시조 신인상 등단(2010) 나래시조 '단수시조' 대상 (2017), 시집 '분꽃엄마' 외, 현재 한국시조시인협회 울산시조시인협회 나래시조 운문시대 회원
 

이서원 시인
이서원 시인

시조는 그 시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절가조의 준말이다. 법고창신의 말처럼 옛것을 따르되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찾아내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시조는 그 본질에 가장 가까이 있는 한 장르임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위 제목에서 일단 우리는 뜻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주를 읽지 않고는 도무지 '유령울림'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날만 새면 신조어가 쏟아지는 이 시대에 그 뜻을 알아챈다는 것은 무슨 외국어 하나쯤 익히는 것과 다름 아니니 실은 심각성도 간과하지 않을 수 없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그것을 한갓 아이들만의 단어로 치부하기에도 우린 너무 고지식한가 싶어 갸우뚱하게 된다.


잠시라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우리들은 이미 서서히 중독을 넘어 주술에 걸린 듯 모든 통제 시스템이 무너진 것도 오래전의 일이 되고 말았다.
회사의 업무 지시, 친구들의 모임 공지, 경조사의 알림까지 모든 것이 소셜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경마장 뒤흔드는 따발총 아나운서처럼' 폰이 쉴 새 없이 소리와 진동으로 지시가 내려지고 평온한 일상은 종잇장처럼 찢어지고 마는 일상을 어찌 할까.
충혈 된 눈으로 밥도 잠도 반납하고 집에서조차도 업무에 시달리는 이 시대의 우리들이다. 그렇다고 표정을 들키고 감정을 들키는 날엔 가차 없이 내일이 사라지고 해고의 칼날이 들이닥칠지도 모르니 그냥 지시에 따를 수밖에 어쩌겠는가.


감긴 눈꺼풀을 억지로 뜨고 새 아침을 맞는 희망찬 하루가 과연 있기는 한가? 반복된 우리들의 초췌한 일상의 실존이 아프기만 하다.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무한반복의 업무들 틈바구니 속에서 얼마나 생의 기쁨과 희망을 발견할 것이며 누가 혜량해 줄인가.
무상감과 무기력감이 지배한다고 해도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무너지거나 허무함만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분명 일상의 무한 반복 속에서 갈아도 얇아지지 않는 공자의 정신처럼 분명 새로운 변이를 꿈꾸며 내일을 기다릴 것이다. 그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준엄한 참 정신임을 믿기에.
 이서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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