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태기
관태기
  • 울산신문
  • 승인 2018.05.1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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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연 수필가

언제부터였는지 몸이나 마음이 무료해지는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 것에서부터 일을 하는 것에서도 그렇다. 어떤 여건에서 꼭 만나야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과연 이 만남을 지속해야만 하는 가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일이 많아졌다. 연말연시를 비롯해 연례행사처럼 생기는 모임에도 마음이 가지 않았다. 부담스럽고 수선스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언제부터인지 그런 생각은 극히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한동안 내게 연이어 일어나는 일련의 것들이 단순히 체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체력의 한계도 무시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관계 맺기의 의문이나 부담이었던 것 같다. 오래도록 이어져오던 작은 소모임도 시들해지고 마음먹으면 일명 번개로 어디든 떠나던 몇몇 지인과의 관계도 그랬다. 나만 그러나 싶어 별난 것인가 여기다가도 그냥 조용히 내 할 일 하고 만나서 편하거나 보고 싶은 사람들과 만나며 살고 싶다.

이유를 찾자면 생활 반경이 너무 넓어지고 신경을 써야 하는 것들에 대한 부담이 시작이기도 했다. 제법 오래전부터 사람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했던 것들이 가끔은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생각의 리듬은 나이가 들수록 롤러코스터를 타 듯 굴곡이 심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며 사는 것이 좋은 순간들도 많았고 일에만 매달리지 않는 내 모습도 좋았다. 한동안 그것이 삶의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어느 날 부터인가 그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내가 스스로 관태기를 겪고 있다고 느끼게 된 것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 탓도 있다. 몸과 시간의 변화는 많은 것들에 영향을 끼쳐 몸이 지치고 힘들면 마음이 먼저 알고 멀리서부터 두꺼운 벽이 생겼다. 내가 왜 이러나 싶을 때엔 이미 몸과 마음이 지쳐 내적갈등을 겪고 있을 때였다. 사람관계는 때로 즐겁기도 하고 부담되기도 한다. 모든 관계가 즐겁기 위해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을 만나서 즐겁지 않은 관계는 바람직하지 않다. 나 한사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불편해도 관계를 위해 참는 것이 누적되다 보니 어느 날 그것이 내게 화를 만들어 놓았다.

현재 나의 상태가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영양가 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에 실증을 느끼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관계에서 심지어 몸을 혹사 시키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살면서 관계 맺기는 일상의 소소한 것에서부터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사람들과 관계 맺지 않고 혼자 살아갈 수는 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 관계라는 것이 관계 맺기를 좋아하는 일방정인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면 문제가 다르다. 부부 사이에도 오래 살다보면 권태라는 것이 오게 마련이다. 그럴진대 타인간의 관계라고 다를 리가 없다.

일로써 만나는 사람은 그것이 스트레스를 가져 온다고 해도 응당 스스로 감당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허나 사적인 관계까지 스트레스가 되고 이 관계를 지속해야 되는지 의문이 생긴다면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개선의 여지가 없다면 그런 관계는 서로에게 아무런 위로나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사람관계에서 왜 그랬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을 때는 나이의 변화에서 오는 신체적 이유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생기는 문제들 때문에 거절하지 못해서 소극적으로 응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핵심이 없는 일이나 방해가 되는 인터넷상의 여러 사람과의 불편한 소통도 차츰 정리해가고 있다. 주체가 원하는 방식이나 모임에 끌려 다니는 듯이 마음에 없는 일은 정중히 거절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너나없이 많은 사람들이 관계망을 연결하지 않으면 소외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로 인해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리저리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부담을 느끼게 하는 일들이 많다. 나 또한 그렇게 연결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도 지금까지 선뜻 내키지 않거나 싫은 것에도 대부분 거절하지 못했다. 내 의사를 충분히 전달하면 먼저 상대가 마음을 다칠까 하는 주저 때문이었다. 거절하지 못하거나 주관적이지 못해서 생기는 차후의 문제들에서 편해질 수 없었다. 그런 부담감에 짓눌리다 보니 오늘까지 왔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관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너무 복잡한 관계들을 맺고 있었던 것 같다. 수없이 많은 모임과 동인활동, 일로 맺어진 것까지 깊이 생각해보면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나온 것 같다. 이제는 그런 것들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적응해야 될 시기가 아닌가 여긴다. 우리 개개인이 언제까지 어떤 누구와 같이 있을 수 있겠는가,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는 시간도 오게 마련이다. 언젠가 혼자가 되는 연습으로 여겨도 좋을 것 같다. 관태기가 관계와 권태기를 줄여서 쓰는 말이라고 한다. 관계속의 권태기 보다 생의 주기에 적당한 자기 관리가 필요한 것 같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나의 뜻과 상관없이 관계 맺기를 한다. 어렸을 때는 부모와 가족 속에 둘려 쌓여 성장하고 성인이 되면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야만 한다. 그 연결에 충실하면서 맺은 관계들이라도 그것이 과하거나 불편한 차원이라면 스스로의 용량에 맞게 조절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너무 냉정하다고도 하겠지만 몸과 마음에도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있듯이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든 처음이 있고 현재가 있으며 그 다음도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일생의 필수 항목이다. 나도 그 생의 정점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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