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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없는 단체나 조직을 두고 오합지졸이라고 비아냥거린다. 당나라군대라는 말도 오합지졸의 다른 표현으로 쓰인다. 쪽수만 많고 내용이 없다는 속어지만 두뇌플레이의 대가인 까마귀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비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제 당나라 군대는 오합지졸이었을까. 미안하지만 아니다.

실제 당나라군은 중국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정예전력이었다. 고구려를 제외하고 주변 국가들을 전부 말발굽 아래에 뒀고 창군 10년 만에 천하를 통일한 대군이었다. 문제는 유독 고구려와의 전쟁에서는 연전연패를 거듭하다 신라와 연합작전으로 겨우 승리를 한 약점을 가졌다. 세계가 인정하는 중국이나 일본을 두고 유독 별것도 아닌 것들이라고 낮춰보는 유일한 지구인이 한국인이라는 우스갯소리와 비슷한 유래를 가진 말이다. 

선거가 끝나자 홍준표 책임론이 거세지고 있다. 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생활인으로 돌아가겠다는 그를 두고 삿대질과 욕지거리가 난무하고 있다. 정치는 타이밍이라는 교과서 같은 기본도 따르지 않는 정치인의 뒷모습이 씁쓸하지만 뭐, 삿대질하는 이들의 손가락도 그리 날렵해 보이지 않는다. 지방선거 참패는 자유한국당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주는 열린 전당대회 같았다. 전국민에게 망조가 든 안방을 구석구석 뒤지게 하고 서랍과 창고, 캐비닛에 구겨져 있던 오래된 나태와 태만의 곰팡이를 탈탈 털게 만들었다.

그 정점이 선거날이었고 그날 밤이 지나면서 삼삼오오 옛주군과 보스들 주변으로 어슬렁거리며 모여들었다. 의원총회라는 이름을 걸었지만 오합지졸들의 합종연횡 같은 모양새였다. 결론 없는 5시간동안 아직도 쥐고 앉은 '친박'과 '비박'의 삿대질이 난무했고 똘만이 하나의 휴대전화 메모로 몇시간을 허비했다. 의총에 앞서 김무성과 김정훈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이야기하고 김성태 대표는 당 해체 수준의 쇄신을 이야기했지만 딱히 그 정도로 수습될 상황은 아니었다.

낡은 정치, 썩은 정치, 패거리 정치를 안주삼아 씹어 돌리면서도 그 정치로 밥 먹고 사는 정치 평론가들은 선거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유한국당의 해체를 온갖 방법론으로 떠들고 있다. 우리 정치의 오염수준이 그나마 줄어들려면 종편에 얼굴 내미는 일을 호구지책으로 여기는 이들부터 쓸어 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농담은 아닌 듯하다.

씹어도 뒤탈이 없고 어쩌면 박수를 받을 수 있으니 맘껏 씹고 퉤퉤 뱉어 버리는 대상이 한 때 대한민국 보수 정당의 중심이라 자처했던 자유한국당이다. 애초부터 이번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선전하리라 예상한 이는 없었다. 적어도 싸워볼만하다는 이야기를 꺼낸 이도 없는 선거에서 결과를 두고 저리도 야단인 꼴은 넘어지면 밟아버려야 속이 풀리는 시정잡배의 근성과 통한다. 14대2. 이 와중에 TK의 단체장이 빨간 깃발 흔들며 꽃다발을 받은 일은 기적이다. 

미안하지만 대구경북을 지켜낸 것은 한국당의 또다른 걸림돌이다. '자유경북당'으로 쪼그라들었지만 적어도 빗장 걸고 농성전에 들어갈 자리는 잡았기에 그렇다. 수구골통의 아성이라거나 반성을 모르는 지역주의 집단이라고 삿대질을 받더라도 버틸 수 있는 거처는 거머쥐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미 자유한국당은 대한민국 보수정당의 정체성을 던져버렸다. 보수의 몰락이라거나 보수의 재건이라고 이야기 하는 이들의 주장은 그래서 논리적 근거가 없다. 지금 정치권에서 이야기 하는 정계개편이나 보수의 재건은 결국 말장난에 불과한 셈이다.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꿔달 무렵, 대한민국 보수정치는 정체성을 잃었다. 공당의 대표라는 자가 주군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단식농성에 들어가는 순간, 보수정당이라는 이름의 정치는 수구골통과 기득권 세력으로 스스로를 규정해 버렸다. 바로 이정현 사태다. 오로지 박근혜를 지켜내기 위한 단식은 스스로의 정치생명에 자해를 가한 것은 물론 그나마 이어져 오던 보수정당의 간판마저 패대기친 결과가 됐다. 그런 정당이 탄핵정국과 진보의 집권, MB의 구속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완전히 무장해제 됐고 이번 지방선거로 사망진단을 받았다.      

딱하지만 한 때 대한민국 보수의 심장이라고 주장하던 정당의 사정이 그렇다. 문제는 우리 정당사에서 보수라 불린 정당들이 정말 보수의 이름에 걸맞은 정체성을 갖고 있느냐는 사실이다. 미안하지만 없어 보인다. 보수의 옷은 입었지만 옷감은 붉게 물들었고 간간히 절대 버릴 수 없는 하얀 과거는 문신처럼 남긴 모양새다. 흔히 보수를 두고 도덕성과 준법성, 안정성을 기둥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보수는 세 가지 기둥을 잃어버렸다. 이승만부터 박근혜까지 이 땅에서 보수라는 이름으로 집권한 이들은 한결같이 수구골통의 가면을 애국심으로 포장했다. 정체성이 없는 분칠한 수구세력은 끊임없이 진화한 진보에 밀려 안방으로,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가능한 어두운 곳으로 그래도 바람 잘 통하고 의식주는 편안한 아랫목을 찾아 삼삼오오 행렬을 이뤘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보수의 가치는 수구가 아니다. 아랫목을 파고들면 우선은 냉기를 피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불을 떼 주는 일꾼이 필요하다. 스스로 불을 떼고 아랫목을 데우는 보수는 건강하지만 고개 처박고 이리오너라를 외치는 보수는 불 떼는 이가 떠나면 냉방에서 얼어 죽기 마련이다. 이 따위 보수는 보수가 아니다. 보수는 자신이 믿는 가치와 전통을 지켜가면서 개혁을 하려는 세력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다.

자신이 믿는 가치와 전통을 움켜쥐고 안방에 틀어박히는 것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골통이다. 세상과 마주하고 변화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보수가 진정한 보수다. 그래서 지금 자유한국당은 깨끗이 소멸해야 한다. 국민을 속이려들면 그 순간 기회는 사라진다.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답이다. 벌겋게 불타 숯덩이가 된 산불의 현장에서 어떻게 새로운 싹이 나서 꽃을 피우는지 곱씹어볼 때다. 그래서 소멸은 재건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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