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울산~포항고속도로 범서 제2터널에서 발생한 차량 화재에서 시민들의 대처가 빛을 발해 대형 참사를 면한 가운데, 터널 내 미비한 안전설비 정비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24일 울산시와 한국도로공사 등에 따르면 현재 울산시 도심에 14개, 울산~해운대 고속도로에 5개, 울산~포항 고속도로에 24개의 터널이 있다.

# 달리던 화물차서 불 23명 부상
하지만 이 가운데 터널 내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연기를 밖으로 배출하는 제연설비가 갖춰진 곳은 울산~해운대 1개, 울산~포항 5개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심 터널들은 제연설비가 전무한 상태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제연설비는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에 따라 현재 1,000m 이상 터널에만 의무 설치하도록 돼 있다. 해당 터널들도 규정에 따라 길이 1,000m 이상에만 제연설비가 설치돼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규정과 관련해 최근에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모든 화재에서 인명 피해의 가장 큰 원인이 연기에 의한 질식이고, 특히 터널은 밀폐된 구조적 특성으로 연기의 배출이 쉽지 않다. 이에 제연설비의 유무에 따라 피해규모나 구조상황 등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

# 1,000m 이상만 현행법상 의무 설치
실제 이번 화재의 경우도 600m의 터널에 제트팬 등 제연설비가 갖춰지지 않았고, 불이 난지 10여분 만에 터널 안이 검은색 연기로 가득 찼다. 자칫 대형 참사로 번질 뻔 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당시 시민들이 차를 버린 채 구조를 우선하고 교통을 통제하는 등 뛰어난 시민의식을 발휘해 23명이 경상을 입는 것으로 피해가 그쳤다.

중부소방서 관계자는 "터널 길이가 길던 짧던 제연설비의 유무에 따라 진화·구조 작업에 큰 차이가 있다"며 "이번 화재도 시민들의 대처가 아니었다면 큰 인명피해로 번질 수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안전을 위해선 모든 터널 내 제연설비 설치는 '선택'이 아닌 '의무'나 마찬가지 임에도, 국내 의무설치 규정이 1,000m 이상인 점에서 한국은 아직 화재 대비에 관해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도심 터널과 고속도로 터널이 같은 기준을 갖고 있다는 점은 특히나 의문을 불러온다. 도심은 고속도로보다 차량 정체가 쉽게 일어나 출퇴근 시간이면 터널 안이 차량들로 가득 메워진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에 화재 시 대처요령이 다른 도심 터널과 고속도로 터널의 안전 기준에 차별화를 둘 필요가 있다. 해외 선진사례를 보더라도 프랑스에선 도심지 터널은 300m 이상일 경우 제연설비를 의무적으로 갖추게 하고 있다.

특히 울산 도심 터널 중 무룡터널과 마성터널은 각각 990여m, 870여m로 결코 짧지 않아 제연설비 설치가 시급하다. 의무 대상이 아닌 터널에 제연설비를 설치하는 것은 시 차원에서 충분히 해결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무룡·마성터널 1,000m육박
서울시는 올해 2월부터 터널·지하차도 제연설비 의무 설치 규정을 1,000m에서 500m 이상으로 강화하고, 미설치된 6곳을 대상으로 오는 2022년까지 제연설비 설치를 완료하기로 했다. 매년 실시하고 있는 소방서등 유관기관 합동훈련도 변화된 규정에 맞춰 확대 실시한다. 특히 도심지 터널의 경우 보다 강화된 기준으로 안전설비를 설치토록 하는 관리지침 개정을 국토교통부에 건의하기로 하는 등 터널 화재에 대비해 전국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최근 울산도 크고 작은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만큼, 경각심을 갖고 터널 안전설비를 정비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울산시 관계자는 "제연시설은 설치돼 있지 않더라도 정기적인 소방시설 점검과 화재 대비 훈련을 병행하고 있다"며 " 안전사고에 대비해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한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2일 낮 12시 27분께 울산 울주군 범서읍 울산포항고속도로 범서2터널을 달리던 한 8t 화물 차량에서 불이 났다. 불이 나자 화재 차량 뒤쪽에 있던 몇몇 운전자들이 소화기를 이용해 불을 끄려고 했지만, 강한 불꽃으로 인해 진화를 포기하고 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몇몇 운전자들은 차를 버리고 도망치면서 다른 운전자에게 소리쳐 대피를 유도하거나, 터널로 새로 진입하는 차들을 수신호를 이용해 후진시켜 더 큰 피해를 막았다.

#시민들 안전의식으로 피해 줄여
시민들의 도움으로 터널 안에 있던 차량 운전자와 동승자 등 23명이 무사히 구조됐다. 이 중 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불은 소방서 추산 5,100만원의 패해를 내고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에 의해 1시간여 만에 진화됐다.

소방당국은 "조수석 뒤편 가운데 타이어 부분에서 라이닝 과열로 불이 난 것 같다"는 트럭 운전자의 진술 등을 토대로 차량 브레이크 계통 이상으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조홍래기자 usjhr@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