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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나무를 읽다

심석정

아마도 너는 전생에 지중해였던 게다
무수하게 반짝이는 저 푸른 물조각들
물푸레, 길게 부르면 온 몸으로 출렁이는

초록의 씨알들이 눈을 뜨는 골짝으로
그 바다 넓은 품을 온통 다 지고 와서
그것도 짙은 쪽빛만 뼛속까지 끌고 와서

전생에 너는 아마도 지중해 파도던 게다
바람도 물빛 바람 온 산맥을 휘감고 와
환골을 다 끝낸 바다, 눈부시다 푸른 전언

△심석정 시인: 1960년 경남 창원 생. 2004년 계간 '시조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2011년 제1회 울산시조문학상. 2014년 이호우 이영도 시조문학상 신인상 수상 등, 시집 '향기를 배접하다' '물푸레나무를 읽다' 외, 한국문인협회 울산문인협회 울산시조시인협회 등.

 

이서원 시인
이서원 시인

가지를 꺾어 물에 담그면 물이 푸르게 변한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라고 한다. 그 물푸레나무가 이 땅에 뿌리를 내려 푸르기 전 어쩌면 먼 이국 땅 지중해에서 살다왔을지도 모른다고 시인은 말한다. 왜냐하면 무수하게 반짝이는 푸른 잎사귀들이 물조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시선이 모아지는 곳, 그 중심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서 사물이 달리 보이는 현상을 포착하는 것이 시인의 감각이다. 보이는 것, 아는 것, 이미 고착화 된 그 상식의 관점을 넘어 자신만의 시야 확보를 새롭게 전개하는 것이야말로 이미지의 반전을 꾀하는 첫걸음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초록의 씨알들이 골짝에서 눈을 뜨는 계절이 오면 그 바다의 푸른 지중해는 출렁인다. 너럭바위 위에 자연무위 도취되어 누워보라, 오감의 모든 감각들은 칠정의 감성과 함께 어우러져 그야말로 이 골 저 골은 무릉도원이 아니겠는가.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자연에 깊이 동화되고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깊이를 깨닫게 된다.
온 골짝과 산맥을 돌아 환골탈태하여 마침내 바다가 되는 물푸레나무는 새롭고 아름다운 생성을 의미한다.
시인 네루다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은 시를 정의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시를 정의하려고 한다. 그중 신달자 시인은 '내 몸과 정신이 말하는 것을 받아 적는 것'이라 했다.


이미 익숙한 서정성에서 또 하나의 절대적 진리를 찾아내어 새로운 정립의 단계로 나아가는 인식의 변형을 시인은 끊임없이 추구해야만 한다. 그것이 주어진 사명의 길이다. '이만하면 되었다'의 적당한 타협으로 시가 완성되었을 때, 그 사생아 같은 시 앞에서 독자들은 절망한다. 심 시인은 그런 면에서 보면 정말 처절하리만치 한 편 한 편 심혈을 기울여 절대고독의 경지까지 차올라 가 쓰는 시인이다. 그의 몸과 그의 정신이 말하는 것에 온전히 귀 기울이고 받아 적는 절실한 시인이다. 그렇기에 물푸레나무를 통해서도 저 먼 이국의 전언을 듣기 위해 조용히 귀를 열지 않았을까 싶다.  이서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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