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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성경 야고보서 4장 14절에 등장하는 말씀이다. 우리 인생이 그렇게 허망하단 것이다. 한바탕 꿈을 꿀 때처럼 흔적도 없는 봄밤의 꿈으로 일장춘몽과도 같단 것이다. 한 세대는 가고 다음 세대는 그 이전 세대를 기억 못한 채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듯 우리네 인생도 영원을 향해 떠다니는 꽃가루와도 같다. 그 피고 지는 인생 순환사를 연극 '복사꽃지면 송화 날리고'를 보며 다시 깨달았다.

제 9회 대한민국 국공립 극단 페스티벌이 지난 28일부터 7월 25일까지 경주에서 펼쳐진다. 첫 날 개막 공연으로 경주 시립 극단의 연극 '복사꽃지면 송화 날리고'라는 작품이 공연됐다. 필자의 오랜 후배인 김채은 배우가 출연해서 관람을 다녀온 감상을 나눌까 한다. 도시 생활을 접고 황혼에 경주 외곽으로 이사해 50년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의 일상이 정겹고도 왠지 서글프다. 그러나 삶의 소소한 일상들이 어쩌면 우리네 인생의 전부로 채워져 가는 듯 작지만 큰 의미임을 이 연극은 나지막이 속삭여 주고 있다. 노부부는 임종을 앞둔 바람 앞의 촛불같은 노모의 병수발을 하며 산다. 노모는 이혼이라는 아픈 과거사가 있다. 남편은 가부장적인 권위로 젊은 시절 아내에게 상처를 안겨 주는 일들을 많이 했다. 아내는 두 시아버지를 섬기며 억척스럽게 맏며느리로서 극복해온 세월이 때론 한스러워 넋두리도 한다. 이 노부부에게 어느 날 이혼을 앞둔 아들이 찾아오면서 가족사의 아픔들이 되새김 된다.

이웃에 사는 서면댁(김채은 분)은 남편에게 늘 얻어맞으며 산다. 고엽제 환자로 살아온 남편의 불행을 홀로 감당하며 뒷수발로 평생을 살아 왔다. 가끔씩 노부부의 집을 찾아와 함께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거친 일상을 감당해내기 버거운 탓에서다. 불행한 가정의 일상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서면댁은 가끔씩 복사꽃을 꺾어 노부부에게 전한다. 맞고 사는 그녀의 시커멓게 멍든 얼굴 사이로 배시시 웃으며 하얀 복사꽃을 전하는 서면댁의 인생이 서럽다. 자신의 이름이 서면댁으로만 알고 평생을 살아온 서면댁에게 김봉녀라는 본명을 노부부가 알려 주지만 서면댁은 실수로 남편을 살해하고 절규한다.

노부모를 찾아온 아들(이현민 분)은 할머니와 노부모와 서면댁을 마주하며 자신의 불행한 가정사를 떠 올리며 자괴감에 허덕인다. 가족사의 비극적 알레고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자괴감에만 빠져있기엔 우리의 인생과 인연이 너무 소중한단 것을 아들은 깨닫는다. 할머니의 임종 후 아들은 노부친의 아껴둔 고백을 듣는다. "시간속에 우리가 있는게 아니더라. 인연을 만들어 가는 것이 시간이더라. 인연 안에 다 있더라. 인연은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더라. 이 바람은 또 어디서 불어오나. 눈 한 번 감았다가 뜨면 이 큰 우주도 이 속에 있더라. 그렇게 화려하고 고왔던 우리네 청춘도, 인연도, 삶도, 죽음도 우주 공간의 질서처럼 흘러가더라" 노부친의 이 존재론적 인연의 의미를 듣고 깨달은 아들은 새 희망의 끈을 붙잡으며 가족들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막을 내린다. 

복사꽃은 4월에 만개하는 꽃이다. 복사꽃이 그렇게 화려하게 하얗고 분홍빛으로 필 때가 가장 아름답다. 그때쯤 소나무 꽃가루도 날린다. 우리는 미세 먼지로 여겨 창문을 닫고 꺼려하지만 그 송화가루 같은 인생이 우리네 덧없는 삶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 이였다. 그러고 보면 2,000억개가 넘는 은하계 우주 속 작은 모래알 같은 이 지구별에 사는 우리는 정말 어떤 존재일까? 만나고 사랑하고 때론 미워하고 다시 사랑하는 그 모든 일들이 다 존재 이유에 대한 어떤 창조주의 섭리안에 있지는 않을까 다시 깨닫게 해준 경주 시립 극단의 공연에 감사한다. 그리고 내일 일을 알지 못한 채 잠깐 피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우리 삶을 연극으로 그려 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2007년 울산광역시 승격 후 올해로 21년째다. 하지만 울산 시립극단은 없다. 왜 그런지 궁금하다. 손기현 작, 김한길 연출의 30여년의 창단 역사를 자랑하는 경주 시립 극단의 공연을 보며 울산광역시에서도 조속히 울산 시립 극단이 창단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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