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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연

조용미

태풍이 지나가고 가시연은 제 어미의 몸인 커다란 잎의
살을 뚫고 물속에서 솟아오른다
핵처럼 단단한 성게같은 가시봉오리를 쩍 가르고
흑자줏빛 혓바닥을 천천히 내민다

저 끔직한 식물성을,
꽃이 아니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꽃인 듯한
가시연의
가시를 다 뽑아버리고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나는
오래 방죽을 서성거린다
붉은 잎맥으로 흐르는 짐승의 피를 다 받아 마시고 나서야 꽃은
비명처럼 피어난다
못 가장자리의 방죽이 서서히 허물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금이 가고 있는 소리를
저 혼자 듣고 있는
가시연의 흑자줏빛 혓바닥들

△조용미(曺容美, 1962년 ~ )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경상북도 고령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장작과를 졸업했다. 1990년 《한길문학》에 <청어는 가시가 많아〉 등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기억의 행성』 『나의 다른 이름들』.2005년 제16회 '김달진문학상', 2012년 제19회 '김준성문학상'.

7월은 연꽃의 계절이다. 땡볕아래 푸른 이파리를 흔들며 꽃은 탐스럽게 손짓한다. 연못에 핀 꽃의 종류는 다양하다. 수련, 홍련, 백련, 가시연, 어리연, 불교에서 대표적인 꽃이 연꽃이다. 두 손 받치며 기도하듯 여여한 꽃대와 넓은 잎 바람에 흔들린다. 시각과 미각과 청각을 돋우는 연은 더운 날 양산을 바치듯 공손하다. 나는 저 연잎처럼 누구에게 그늘을 지어 보기는 했는가.
어제는 가까운 통도사 말사 극락암에 다녀왔다. 햇볕이 비치자 극락암 연못의 노란 어리연들이 너도나도 서둘러 입을 뾰족 내밀기 시작했다. 계절의 심상은 고요하게 푸르다. 아름다운 조화로 어떤 사물에든 섬세한 언어로 형상화하는 조용미 시인의 불교적인 생명에 대한 깨달음의 시선은 늘 따뜻하다. 필자가 좋아하는 시인 중에 한 사람이다.
 

한영채 시인
한영채 시인

정원에서 가시연꽃을 피운 적이 있다. 가시연꽃은 전체에 가시가 많이 있어서 가시연꽃이라고 한다. 새끼손가락 마지막 마디 만하게 생긴 여문 씨앗을 칼로 틈을 주어 물에 담그고 한참 기다려야 씨앗은 입을 열고 싹이 나온다. 여문 둥지를 뚫고 나온 싹은 꽃 피우는 시간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꽃은 수줍은 듯 볕이 쨍쨍한 아침에 입을 열었다가 찰나처럼 닫기를 서너 날, 가시연꽃의 수명은 다한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찬란할 만큼 가시연꽃의 자태가 흑자줏 빛으로 요염하다. 기다림을 보상하듯 오묘한 색은 오묘한 불교적 세계로 이끌기도 한다. 하루 날 잡아 경주로 서출지, 월지를 다녀와야겠다.  한영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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