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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다리에서

조필련

하마,
기다려 온 등 뒤로
따박따박 업히는 발걸음 소리

오늘 너는 왈칵 소나기로 왔다
너에게로 가는 섬 집
저 너머 수선화 꽃대 어지러워
그냥 세월로 주저앉았다
가슴 한복판에 놓여 있는 징검다리
언제나 앙칼질로 오는 사람
물살 겹겹이 썰물로 흘러도
스무 살 사투리로 다시 오는 사람
두 팔 벌려 지나가도
미쁜 심장으로 붙잡아 주는 손

잠시 입 다문다고 나 잊은 건 아니다
까닭 없이 덧없는 날
내 켜켜이 건너갈 아날로그 그 다리

△조필련: 경남 마산, 여성조선 문학상, 서덕출 백일장 및 다수, 시세계로 등단, 남구 문학회 회원, 시나브로 시문학회 회원, 시낭송가, y화랑 서양화 회원
 

박진한 시인
박진한 시인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가 디지털을 꺾을 때가 있다. 아니 그날들이 그냥 그리울 때가 있다. 오늘이 그날이다. 출근길 핸드폰에서 어느 조용한 시인의 시 한 편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하마' 첫 단어부터 강력한 임팩트다. 바라건대 행여나 어찌하면 가까운 미래의 긍정과 경상도에서 쓰이는 이미, 벌써 아쉬움을 더한 긍정 완료의 사투리 "하마"라는 독특한 단어도 떠오른다. 이어 큰 사건이 일어날 조짐 '기다려 온 등 뒤로'라는 추리소설의 한 장면 같이 또박또박 발소리가 들린다.
마침 이 자리를 빌려 같은 글인데 왜 시(詩)라고 할까? 내가 시(詩)를 쓰는 이유는 시 한 편에서 단막극과 장막극을 보고, 짧은 시에서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과 같기에 쓴다. 결국 시(詩)는 보이는 것보다 숨은 이야기가 더 많다. 독자가 나름의 해석과 상상을 키우기 위함이다. 이 시에서 이런 시어들이 참 많이 발견된다. '섬 집, 수선화, 징검다리, 미쁜' 등 이들을 중의적인 연관 친척으로 만들어 넣었다. 이것은 시인의 시적능력이다.
즉 '섬 집'은 시 전체를 함축 같은 단어다. 섬이란 독립적이고, 혼자이며, 또 외로움과 그리움이다. 집이란 편안함 안락함의 결정판이다. 외로움과 안락함이 공존하는 아이러니가 한 단어에 들어있는 것을 시인만이 알았다. 그 속을 들여다보니 수선화가 연못에 비친 자신을 자신인지도 모르고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혼자 죽었다는 나르시시즘 탄생신화로 다리를 놓았다. 이젠 허물어지는 청춘 아날로그로 지금을 지우지만 앙칼지게 다가오는 물살 겹겹 그리운 파동이 써버린 새로운 형용사 '미쁜' 미워해도 어여쁘게 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미쁜 심장으로 잡아주는 손' '입 다문다고 나 잊은 건 아니다'라고 역설로 상상을 키우며 화가이기도 한 시인의 끝없는 시작을 잡고자 하는 엔딩그림을 보고 있다.
박진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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