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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지방정부가 출범한 이후 울산에서는 도시 자체를 리모델링하는 담론이 이어지고 있다. 23년의 적폐청산이라는 거대한 담론부터 시민이 주인인 시대를 위한 겉치레식 관행 탈피까지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일부에서는 '재조울산'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게 내뱉는 것을 보면서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바뀔 수 있겠나 싶은 기대부터 고민없는 변화가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만감이 교차한다.

문제는 울산의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지난주 송철호 시장은 태화강의 미래를 위해 전문가그룹과 함께 태화강 비전 2040 연구 용역 추진과 관련 의견수렴을 위한 라운드 테이블을 가졌다. 특정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토론 방식의 의제수렴은 인상적이다. 이 모임에서 태화강의 미래에 대한 어느 정도의 윤곽이 그려졌다니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태화강이 바뀔지 두고 볼 일이다. 문제는 울산의 미래를 위한 큰그림이다. 그 그림을 위한 의제설정과 토론의 방식도 이같은 열린 토의 방식의 여론수렴이 필요하다.

울산을 바꾸든 갈아엎든 전제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울산의 현주소와 오늘의 울산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울산은 7대 광역시, 120만 시민이 거주하는 소득 1등 도시라는 위상과 너무나 동떨어진 구조적인 모순을 가진 도시다. 산제수도라는 말에는 어울릴지 모르지만 한 도시를 구성하는 인문학적 요소는 너무나 빈자리가 많은 도시라는 이야기다. 바로 의료와 교육부문부터 교통과 문화관광 기반까지 울산의 현주소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난 반세기동안 울산은 이 부분에서 말도 안되는 홀대를 당하며 도시의 덩치를 키워왔다.

무엇보다 대학의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다. 국립대 유치로 과기원이 자리를 잡았고 전국의 우수 인재가 울산에 모이고 있으니 '교육도시' 울산의 내일이 밝다는 말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구름 잡는 소리다. 울산과기원은 설립직후부터 '세계적인 과학인재 양성'을 대학의 정체성으로 걸었고 그 목표치에 맞게 교육이념과 체계를 짜가고 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의미 있는 존재지만 지역의 대학부족을 채워줄 교육기관은 아니다. 이 때문에 울산은 '아주 특별한 세계적인 교육기관' 한 곳과 사립대학 한 곳이 있다. 지역에 대학이 부족하면 당장 진학의 문제가 부각되지만 멀리 보면 도시 발전의 동력이 없는 결정적인 결함이 된다. 물론 인근 부산과 양산, 그리고 경주에 여러 대학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지역의 대학은 지역 정체성과 그 궤를 같이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 단견이다.

울산의 경우 대학의 절대부족 현상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 가지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공업도시라는 이미지 때문에 울산은 대학조차 공업도시와 연계한 발전을 해왔다. 지금은 전국에서도 유수한 사학으로 성장한 울산대도 출발은 공대였다. 하물며 시민들의 염원으로 설립된 국립대 역시, 이공계 중심의 울산과기대로 출발했다. 이 때문에 지역의 산업과 연계한 교육은 만족도도 높고 전망도 밝다. 하지만 이공계 중심의 대학으로 편향된 대학교육은 지역의 정체성에 상당한 결핍현상을 가져왔다. 당장 지역의 대학부족 때문에 각종 인문사회분야 연구가 울산과 무관한 지역의 대학에서 이뤄지거나 진행되고 있다. 시와 구군의 정책에 영향을 주는 자문위원들도 울산과 무관한 대학소속 교수들이 자리를 차지하며 이런저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같은 과정으로 생산되는 여러 결과물들이 버젓이 울산이라는 이름으로 축적돼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회람되고 나아가 이를 새로운 연구자들이 자료로 인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990년대 이후 전국에서 수많은 기업들과 사학재단들이 앞 다투어 대학을 설립했지만 울산은 '딴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 많은 대학이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했을 때, 울산은 단 하나의 대학 설립도 없었다. 국내 재벌 기업들이 울산의 땅을 갈아엎고 공기를 더럽히고 강과 바다를 먹칠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대학은커녕, 연구기관이나 인재육성엔 언제나 고개를 돌렸다. 그동안 울산에서 기업 활동으로 부를 창출했다면 이 지역의 미래를 위해 장기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이른바 굴뚝산업으로 부를 창출한 기업은 울산의 땅과 공기를 더럽힌 '원죄의식' 때문에라도 미래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세계적인 산업도시들과 비교하면 이 문제는 부끄러워진다. 함부르크나 시카고, 바이에른과 필라델피아 등이 그렇다. 한 도시에서 성장한 기업들이 어떻게 그 도시의 인문학적 인프라에 투자했는지를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하지만 울산의 경우 울산시나 교육청 등이 상생을 이야기하면 면피용 기부에 열중하고 언론이 이를 지적하면 협찬이나 하고 광고나 던져주면서 꼬리를 자르는 게 고작이다. 세금 혜택을 받는 기부에는 모든 열정을 다해 얼굴을 내밀고 사진 찍어 퍼 나르는 바로 그 기업들이 수십년 동안 울산의 땅을 파헤치고 물과 공기를 더럽힌 장본인이다. 그런 그들에게 울산의 미래 따위는 안중에 없다. 이제 그 원죄를 정면으로 마주할 시점이 됐다. 울산의 천혜절경과 희소성 높은 자연유산을 갈아엎고 찍어 할퀴고 잘라 뭉갠 장본인들에게 원죄의식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을 요구할 시점이 됐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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