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흔적
  • 울산신문
  • 승인 2018.08.0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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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옥 연
수필가

 

어머니 부재로 느꼈던 그리움
이제는 결혼한 딸에게로
흔적은 시간의 한점 일뿐
나도 홀로서기가 필요할것같아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서는데 마음이 허해졌다. 며칠 볼일 겸 쉬려고 왔던 딸 내외가 돌아가고 없기 때문이다. 이부자리는 정돈되어 있고 결혼 전에 딸이 쓰던 방을 서재로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그 방에서 임시로 며칠을 묵었다. 어수선했던 방이 원상복귀 된 것을 보면서 떠났구나 하는 허전함이 빈 집에 내려앉은 듯했다. 누군가 다녀갔다는 흔적은 내게 트라우마였다. 매번 겪었던 어린 시절도 그랬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다. 
 

친정에 왔던 딸이 제주도로 돌아가는 날이었는데 태풍이 오면서 비행기가 결항될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날씨가 크게 나쁘지 않아서 아이들이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떠나면서 일하는 곳에 잠시 들러서 보고가라는 것을 번거롭다며 그냥 보냈다. 그런데 깨끗이 정리된 집에서 누군가 떠났다는 흔적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굴뚝을 바라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방을 정리하는 일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면 어머니가 있거나 때론 다녀갔다는 흔적이고,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는 오늘도 다녀가지 않았다는 표시다. 그러다가 어떤 날은 굴뚝이나 아궁이에 이상이 없어도 다녀간 흔적을 남기곤 했다. 반찬을 만들어 두거나 이부자리가 정돈되어 있을 때도 있고, 가마솥이 미지근하게 온기가 남아 있을 때도 있었다. 그 흔적은 내게 당신을 더 보고 싶게 했다. 어머니가 다녀간 흔적을 찾았으면서도 며칠 오지 않아 참았던 미약한 인내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이었다. 그런 밤이면 혼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새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오르기도 했다. 날이 밝고 일상이 시작되면 그 외로움도 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상에 빠져서 하루하루를 넘기면서 성장기를 보냈다. 그렇게 했는데도 아직 덜 채워졌는지 자식으로 인해 겪어야 한다. 
 

자주 혼자인 집에서 살아본 사람은 안다. 누군가가 다녀간 것이 얼마만큼의 기쁨이면서 또한 그리움인가를, 딸아이의 흔적이 내가 어릴 때 어머니의 부재로 느꼈던 그 감정으로 다가오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결혼 전에 딸은 집안일을 그다지 돕지 않는 편이었다. 방 구석구석 주방까지 깨끗하게 치우고 떠난 딸이 철이 들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바쁜 엄마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더 마음을 아리게 했다. 곁에서 같이 일하다가 남편을 따라 제주도로 떠난다고 했을 때는 너무도 허탈함마저 들었다. 평생은 아니지만 내가 하는 일을 도우며 같이 있어 줄줄 알았다. '언젠가는 떠나겠지'하는 생각도 하지 못해서 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딸이 다니러 와서 집안을 윤기가 나게 청소하고 치우고 떠나니 그 흔적이 더 크게 느껴진다.
 

딸이 떠나간 빈 공간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아직 아이들이 품어낸 공기라도 남아 있는 듯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내 어머니도 매번 우리가 떠나오고 나면 그랬을 것 같다.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이제 많이 연로하다. 거동도 그렇게 자유롭지 못하여 자식들 집에도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늘 당신을 보러 가는 것이 가끔은 과제처럼 미안할 때가 있다. 바빠서 자주 못가면 어머니는 언제 오냐고 보채곤 한다. 어쩌다 시간을 내서 다니러 가면 좋아하면서도 언제 갈 것인지 부터 묻는다. 돌아오는 것은 더 힘들다. 또 언제 올 거냐고 답을 바래서 난처하다. 헤어짐은 짧은 것이 좋아 서둘러 나서면 그것마저 서운해 하니 낭패다.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면 집구석구석 내가 남긴 흔적들이 보인다고 하며 힘을 놓고 있다. 불편한 마음이 안정되려면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바쁘게 지내야만 다소 마음이 안정되며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다.
 

어쩌면 딸도 친정에 왔다가 돌아가서는 내가 겪는 마음의 갈등 속에서 한동안 지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만 더 애잔하고 갈등이 생긴다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나도 이제 여린 내 감정을 딸처럼 좀 다스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에 다녀갔던 것을 보면 늘 아린 마음이었지 싶다. 
 

어머니가 내게 의지하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나도 홀로서기가 필요할 것 같다. 흔적은 그냥 지나간 시간의 한 점이라 여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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