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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박목월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날은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귀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過客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門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워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박목월-시인, 경북 경주 출생. 본명 박영종. 1939년 '문장'에 '길처럼' '연륜' 등이 추천돼 등단했다. 청록파 시인, 서정시의 전통적 시풍을 세움, 향토성이 강한 서정에서 출발해 만년에는 신앙에 깊이 침잠하는 시 세계를 보였다. '심상' 발행인 역임, 한국시인협회장, 시집으로 '산도화'(1955), '경상도의 가랑잎'(1962) 등 다수가 있다.
 

한영채 시인
한영채 시인

매미 소리로 펄펄 끓는 팔월 한 계절이 짙어간다. 녹음도 그늘도 깊어 간다. 여름의 나른함과 더위를 잊기 위해 만보 걷기를 시작한지 보름째다. 호수를 돌다가 공원 솔마루 길을 걷는다. 공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개를 몰고 오는 사람, 라디오를 들으며 다니는 사람, 팔을 흔들며 운동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여러 사람들이 모여 공원의 풍경을 이룬다. 호숫가 벤치엔 멍한 눈빛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솔마루 길은 소나무가 울창하다. 길은 아늑하고 시원하고 향기롭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 상큼하다. 그늘에서 풀벌레 울음도 연하게 들린다. 초록이 깊어질수록 사방에서 매미소리 우렁차다. 어디선가 멀리서 가까이서 까치소리 들린다. 꼬물꼬물 지렁이가 흙발로 기어 나온다. 개미들이 분주하다. 온몸이 땀에 젖는다. 누군가 지옥에서 빠져 나오려면 걸어라 그냥 걸어라 한다. 땀을 흠뻑 흘린 후 늘어졌던 마음은 한층 가뿐함과 함께 한 여름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첫 시집 '모량시편'을 낸 필자와 목월 시인은 경주 모량 출신이다. 70~80년대 4번 국도는 경주에서 아화까지 한 줄로 선 버드나무로 하늘을 찌르듯이 곧게 뻗은 가로수 길로 저 멀리 수평선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던 한때 유명한 길이었다. 목월선생의 시편에서도 종종 나오는 건천 가는 가로수 길, 여행 중 나무를 보며 시인의 고독한 심상으로 보며, 읽으며, 느끼며 나무 그늘로 들어가 한 그루 마음의 나무를 키워 가는 것, 늙은 느티나무를 보고 나를 만나고, 무리지은 단풍나무 그늘 속에서 네가 커 가는 시간을 보고, 마을 어귀를 지키는 과객 같은 팽나무 그늘에서 사랑을 품은, 외로운 파수꾼 회화나무의 그늘에서 잠시 나무의 은유를 듣자, 나무가 커 가는 계절에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한그루 마음의 큰 나무를 심자. 
 한영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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