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이야기 둘
손주 이야기 둘
  • 울산신문
  • 승인 2018.08.3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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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선 수필가

1. 냠냠 식당
손주들이 소꿉놀이를 한다. 오늘의 놀이는 식당 놀이란다. 둘이서 머리를 맞대더니 식당 이름을 냠냠 식당이라고 정한다. 머리에 얹은 긴 원통형의 요리사 모자를 쓴 손자와 세모 스카프를 쓴 손녀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메뉴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햄버거 고등어구이 스파게티다.
냠냠 식당 사장의 운영방침이 신선하다. 손님이 들어올 때는 반드시 '안녕하세요?'하고 먼저 인사를 해야 하고 냠냠 식당 사장은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배꼽에 모으고 '어서 오세요'라고 반겨야 한다. 식사는 냠냠 맛있게 먹어야 하고 식사가 끝나면 '잘 먹었습니다.' 라고 웃으며 인사를 하면 주인은 다시 고개 숙여'고맙습니다.' 라는 인사를 하고 배웅하라고 한다. 그래야 서로 행복해진단다.

7세 손주와 5세 손녀가 정한 냠냠 식당 운영방침을 보고 있자니 세상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다. 모름지기 사람이 만나면 인사가 우선이고, 음식이란 맛있게 냠냠 먹어야 한다. 먹어 줄 대상의 입맛을 고려해 주방에서 정성 들여 만든 시간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정서상 밥 먹을 때 말을 하지 말라고 밥상머리 교육을 받은 우리 세대는 대부분 말없이 후딱 밥을 먹어치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 음식을 차린 주부의 입장에서는 손에 묻은 물기를 닦고 앞치마를 벗고 식탁에 앉을라치면 그새 식구들은 밥을 다 먹고 일어서기도 예사다. 그럴 때는 허탈하기 짝이 없다. 음식을 앞에 두고 애먼 짓을 하거나 투정을 부리면 산업공단 굴뚝에서 뿜어낸 악취라도 맡은 양 옆 사람의 입맛까지도 그르치게 된다.

그간 살면서 주부로서, 손님으로서, 내가 한 행위를 더듬어 계산하며 냠냠 식당에서 반성한다. 이어서 시작되는 손주의 초밥 조리법을 듣는다. 빨간 무와 양파를 넣고 밥을 비비란다, 냠냠 식당 사장이 깜빡했는지 다급히 내가 잡은 수저질을 멈추게 한다. 아직 비비면 안 된다고 큰일 난 듯 말한다. 초밥 소스를 넣고 순서를 지켜 비벼야 한단다.

그렇다. 가장 중요한 순서를 잘 지켜야 할 일이다. 순서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사뭇 진지한 손주들의 놀이를 보면서 반성한다. 삶에 있어 정해진 기준에 따르는 순서를 대충 여기고 산 적은 없는지. 주인과 객이 인사의 순서를 잘 지키고, 초밥을 만들며 순서를 잘 지켜야 한다는 냠냠 식당 사장의 말대로 사람살이에 있어 매사 나름의 순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봄이는 그렇게
세상 모든것을 믿으며
온 몸 가득
꿈나무를 키울 것이다

2. 꿈나무
지난 일요일, 텃밭에 놀러 온 손녀 손을 잡고 길섶 앵두나무에 달린 앵두를 따 먹었다. 조가비 같은 손에 쥐여 주는 대로 날름날름 입으로 가져다 먹던 봄이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앵두 씨앗을 삼켰어!"
많이 놀랐을 봄이를 진정시키느라 똥을 싸면 함께 나올 거라며 괜찮다고 했다. 그랬지만 봄이 눈빛은 두려움에 가득 찬 듯해 보였다. 그걸 본 봄이 엄마가 앵두를 따느라 나뭇가지 속에 팔을 뻗은 채 태연히 말했다.

"괜찮아, 봄이 몸속에 앵두나무가 자랄 거야"
그 말을 들은 손녀가 더 놀라겠다며 제 엄마를 나무라려고 할 때, 앵두를 따고 있는 제 엄마와 나를 번갈아 보던 봄이가 내게 물을 달라 했다. 다급히 달려가서 들고 온 물 한 컵을 버겁다 싶게 다 마신 뒤 여섯 살 손녀가 해맑게 웃으며 소리쳤다.
"할머니, 내가 앵두나무에 물 줬어."
봄이는 그렇게 세상 모든 것을 믿으며 온몸 가득 꿈나무를 키우며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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