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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박경리

이제는 누가 와야 한다

산은 무너져 가고
강은 막혀 썩고 있다
누가 와서
산을 제자리에 놔두고
강물도 걸러내고 터주어야 한다

물에는 물고기 살게 하고
하늘에 새들 날게 하고
들판에 짐승 뛰놀게 하고
초목과 나비와 뭇 벌레
모두 어우러져 열매 맺게 하고

우리들 머리털이 빠지기 전에
우리들 손톱 발톱 빠지기 전에
뼈가 무르고 살이 썩기 전에
정다운 것들
수천 년 함께 살아온 것
다 떠나기 전에 누가 와야 한다

△ 박경리 작가: 1926년 10월 28일~2008년 5월 5일,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 제6회 호암예술상(1996), 금관문화훈장(2008), 2000년 시집 『우리들의 시간』, 2004년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진한 시인
박진한 시인

365일이란 KTX 고속열차는 직선 같은 레일 위에서 잠깐 졸다 보니 아쉬움이란 종착역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참 많은 느낌을 싣고 또 잊어버리고도, 늘 끝이란 시작이란 말과 함께 들어옵니다. 그러나 끝은 끝일뿐이지만 시작은 기다림이지요. 오늘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토지' 작가로 알려진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소설이 아닌 시를 읽어보기로 합니다. 시는 시인이 가슴에 한 낙서입니다 '기다림'이란 이 시는 오늘 답답한 현실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주길 기대하며 또 누군가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불쑥 '토지'보다 더 걸작을 써 주길 바라며 한 가닥 바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독자에게 맞게 해석하면 딱 맞아떨어지는 점쟁이 말 같은 시를 들여다보면 첫 줄에 전체가 들어있습니다 "이제는 누가 와야 한다" 이 간단명료한 한 줄 문장이 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전체입니다.


요즈음 와서 보면 더욱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현재의 사회적 상황이나 거들먹거림, 글들이 모인 곳까지 패거리를 만들고 돌아가며 받는 썩은 것들, 현란한 자랑거리로 쓰시려는지, 선생께서는 이런 것들에 큰 변화를 바라는 점잖은 표현이 아닐까 싶군요. 나 자신도 잘못을 돌아볼 때다. 연초에 세운 계획들 다 어디에다 묻었는지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겨우 되먹지도 않은 비밀 딱하나 만들고 나니 끝이군요.
선생의 시를 읽고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인가를 새로움이 또 기다려집니다. 연을 놓으며.  박진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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