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린 (逆鱗)

선안영

1.
창문들 꼭꼭 닫힌
도심 속에 교보 빌딩

오래된 거울처럼
풍경만을 비추다

아가미, 숨을 내쉬듯
열리는 들창 하나

2.
새벽 네 시 아파트 숲, 잠 못 든 먼 불빛

겹의 문과 주름 커튼 거두어진 타인의 방

들려진 비늘이 뜯겨
씀벅이는 상처 같다.

△ 선안영 시인: 전남 보성 출생,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초록몽유> <목이 긴 꽃병> <거듭 나, 당신께 살러 갑니다>, 현대시조100인선 <말랑말랑한 방> 외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무등시조문학상 등.
 

이서원 시인
이서원 시인

한비자의 <세난>편에 보면 역린지화(逆鱗之禍)라는 말이 나온다. 누군가의 치명적인 약점을 건드리면 화를 입는다는 뜻이다. 특히 군주에게 있어서 거꾸로 난 비늘 즉, 역린을 건드리지 않아야 자신의 유세를 성공시킬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어찌된 일인지 자꾸만 상대의 역린을 건드리려고 한다. 그 대상이 누구든 끝없이 약점을 들추어내고 그 일로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시대로 흐르고 있다.


이제 다시 시로 돌아가 보자. 첫 째 수에서 도심 속의 교보빌딩이라는 거대한 용 한 마리가 유리창이라는 비늘을 몸에 달고 하늘로 승천하려는 듯 높이 솟구쳐 있다. 거대한 자본의 상징물인 양 화려한 창으로 구름과 바람과 별과 달을 담기도 했을 아름답던 풍경 너머로 갑자기 누군가 작은 들창 하나를 열었다. 그것을 역린으로 보아내는 시인의 본능적 감각은 가히 촌철살인이다. 난공불락 요새의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성벽이 무너지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리고 연이어 둘째 수에서도 아파트의 숲을 통해 본 새벽 네 시 미명의 풍경이다. 문과 커튼이 거두어진 타인의 방을 통해 역시 비늘이 뜯긴 상처를 유추하며 이 시대의 슬픈 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보아냈다.


두 장면의 공간은 상이하지만 시선과 사고는 같다. 물질만능주의라는 거대한 용은 끊임없이 승천하려고 몸부림치는 우리의 모습과 어찌 다르다 하겠는가. 역린이라는 턱 밑의 비늘은 각자가 다르다. 권위, 권력, 이기심, 독선으로 자신의 역린을 만들어 두었다면 이제 과감히 거두어야 할 때다. 자존심마저 버리고 출세와 야망과 이상만을 쫓다보면 어느새 본질의 모습은 놓치고 말 것이다.
새해가 왔다. 저마다의 꿈 하나씩 다시 보듬으며 자신의 소망을 상기해 보자. 교보빌딩과 아파트 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 유리창을 통해 이해와 관용과 보듬음의 들창 하나를 열어두고 소통의 새 바람이 연신 들락거렸으면 좋겠다. 이서원 시인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