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재로 보존되는 개운포·문수산·운화리성지
지역 문화재로 보존되는 개운포·문수산·운화리성지
  • 강현주
  • 승인 2019.02.0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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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주 문화부 기자
울산시 기념물 제6호 개운포성지.
울산시 기념물 제6호 개운포성지.

울산지역에는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는 옛 성지(城址) 세 곳이 있다. 첫 번째 울산의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된 '개운포성지'는 울산시 남구 성암동 81 일대에 위치한다. 개운포는 조선시대 전기부터 수군의 만호가 주둔했으며, 세조에서 중종시기까지 경상좌수영(慶尙左水營) 소속으로 낙동강 이동지역 동남해안을 방어하는 수군의 기지였다.

개운포성은 외황강과 울산만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둘레는 약 1,264m이며 남북으로 긴 타원형의 성곽이다. 평지와 산지의 특성을 모두 갖춘 평산성(平山城)으로 성내에 골짜기를 가지고 있는 포곡성(抱谷城)이기도 하다.

1459년(세조 5) 동래 부산포의 수영이 개운포로 옮겨와서 1592년(선조 25)까지 개운포는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慶尙左道 水軍節度使營)이었다. 수영이 동래 해운포로 이전된 이후 개운포에 다시 만호진이 운영됐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개운포에서 3차례 정도의 전투가 있었다는 점에서 개운포가 지속적으로 전략적 군사 거점지역으로 운영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념물 제34호 문수산성지.
기념물 제34호 문수산성지.

두 번째 울산시 기념물 제34호 '문수산성지'는 울주군 범서읍 천상리 산 153일원에 자리하고 있다. 문수산성은 문수산(해발 599m)의 8부 능선을 따라 테를 두르듯이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성내에서 수습된 토기편과 기와편 등으로 볼 때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까지 울산·언양 일대를 방비할 목적으로 축조된 산성으로 추정된다.

성벽의 평면은 타원형으로 길이 850m정도다. 남서쪽과 북쪽 일대는 성벽이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지만 동쪽과 북서쪽 일부는 많이 훼손된 상태다. 성벽은 내벽과 외벽을 쌓는 협축(夾築)이며 단면은 사다리꼴을 이루는데 가공된 듯한 자연석과 막돌을 이용하여 성돌이 서로 물리도록 쌓았다. 지표상으로 확인된 성벽의 높이는 50~143㎝ 정도 잔존한다.

문지는 성의 동남쪽에서 확인되며 문지의 내측에서 건물지의 흔적이 보인다. 출토 유물로는 성의 동남쪽과 봉우리의 정상부에서 다량의 기와편과 토기편이 수습됐다. 토기편 중에는 사각형의 구멍이 상하로 엇갈리게 뚫린 굽다리접시 편이 있어 삼국 시대에 신라가 이 성을 축조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이 성의 북동쪽 5.5㎞ 지점에는 고대 굴아화현이 위치하고 있어 '굴화산성(屈火山城)'이라고 전해오고 있으나, 문헌상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된 '운화리성지'는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 산 159 일원에 위치해 있다. 운화리성은 대운산(해발 742m) 동쪽 지맥의 한 봉우리(270m)와 두 가닥의 능선, 그리고 계곡을 포함해 축조된 포곡식 산성이다. '대운산성'이라고도 불린다.

북쪽 성벽은 훼손이 심하지만 남동쪽은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성벽은 자연석을 손질해서 급경사 지역은 내탁(바깥쪽은 석벽으로, 안쪽은 잡석과 흙으로 채워 쌓는 방법)하고, 경사가 완만한 지역은 협축(성벽의 안팎을 모두 수직에 가까운 석벽으로 쌓는 방법)해 쌓았으며, 규모는 길이 약 1㎞, 높이 100~220㎝ 정도이다.

성내에는 일부 손질 된 듯한 자연석을 이용해 축조한 둥근 석단시설이 남아 있으나 무엇에 쓴 것인지 그 성격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이 성은 성내에서 발견되는 토기편과 아래쪽에 인접한 운화리 고분군은 참고하여 볼 때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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