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향 찾아, 학이 날아오는 기적
옛고향 찾아, 학이 날아오는 기적
  • 울산신문
  • 승인 2019.02.1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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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두 시인·소설가

태화강에 겨울철새가 많이 찾아온다는 소식은 예사로 여길 일이 아니다. 해마다 태화강 십리대숲 일대는 겨울을 나기 위한 철새들이 날아오고 있지만 올해는 예년에 보이지 않던 새들이 11종이나 늘었다는 소식이다. 울산의 대기가 그만큼 좋아졌다는 얘기고보면 시민들에겐 드물게 듣는 희소식이다. 지긋지긋한 공해를 이제야 잡을 수 있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지난날의 기억을 돌아보게 만든다. 

30년 저쪽으로 세월이 흘러간 1991년 5월이었다. 울산시가 그때 평화의 상징으로 세계만민의 사랑을 받는 비둘기를 사육해 시 전역에 보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부산 용두산공원관리사무소에서 분양받은 비둘기 100마리를 숲이 우거지는 학성공원에 놓아 기르기로 했다. 예쁜 새집을 비둘기 숫자에 맞춰 만들고는 나무에 달고 간단한 기념식도 가졌다. 학성공원을 찾는 시민들,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평화로운 마음을 갖게한다는 목적외에 귀한 날짐승이 부디 평안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쏙 밀어넣어 주었다. 

그러나 비둘기들은 이러한 바람을 여지없이 까뭉게버렸다. 시 전역으로의 보급은커녕 100마리의 비둘기가 단 한 마리도 남지않고 그것도 1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도망쳐버린 것이다. 시의 체면이 구겨지고 어처구니없는 일에 대한 뒤끝이 시끄럽게 돼버렸다. 비둘기가 예쁜 새집을 지어주고 먹이까지 두둑하게 넣어주었는데도 왜 둥지를  떠나가버렸는지의 원인을 알기위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부산과 울산의 전문가를 초빙해 조사한 뒤의 결론은 처음부터 예상한데로 공해때문이었다. 울산만에서 내륙쪽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공단의 공해를 밀어지나는 곳에서 일어나는 공해현상 때문으로 원인을 밝혀낸 것이다. 한낱 해프닝이 되고만 이 사실을 나는 그로부터 1년 뒤인 1992년 4월 14일 자 경상일보에 칼럼으로 쓴 적이 있었다. 다시 생각하면 저절로 쓴웃음이 나온다. 하긴 그 비둘기들도 제 날개로 날아갔기 망정이지 그대로 자손을 번식하고 있었다면 시민들로부터 크게 미움을 살 뻔 했었다. 그토록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비둘기가 지금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유해동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편으로 그런 무지와 시행착오를 거듭함으로써 공해를 물리칠 수 있었다는 생각에 머물게된다. 그런 시행착오와 실수를 거듭함으로써 어엿한 생태환경도시 울산을 꾸며놓게 된 것이 아닐까? 

한낱 작은 농어촌에 불과했던 울산을 공업도시로 탈바꿈시키고 4,000년 빈곤의 역사를 종식시킨 주역도 무지는 있었다. 물론 그가 이루어놓은 산업화의 공적을 덮을 수 없다고 하지만 제2차 산업의 우렁찬 수레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 속에 뻗어 나가는 그날엔 희망과 전망이 눈앞에 도래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 그 연기 때문에 우리는 긴 세월동안 신음해야했다. 문전옥답을 버리고 선대의 산소와 정든 마을, 내 집을 뒤로 하고 떠나야했다. 우리가 겪어야했던 쓰라린 아픔이 어찌 이것뿐이었으랴. 이 밖의 더 큰 피해도 참고 견디며 한편으로 산업도시건설에 매진하느라 산업도시건설의 원천이 되었던 태화강이 죽어있는 것을 미쳐모르고 있었다. 뒤늦게 그 강이 죽어있음을 보고는 모두가 하나되어 내몸의 병을 쫓는 마음으로 달려들어 기어이 죽은 강을 살아 숨쉬는 강으로 살려놓았다. 이 사실은 값으로 환산 못할 엄청난 큰 몫의 수확이었다. 시민들의 하나 된 힘으로 결실하게 한 아름답고 위대한 시민운동이었다. 가히 시민운동을 넘은 혁명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은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죽은 강을 살리고, 어떤 기관과 단체 또 개인이 어떤 방법으로 참여해 봉사하며 뛰어들었던가를 적은 역사의 기록물을 남기는 일이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는 법이다. 생생하게 증언할 사람과 흔적이 남아있을때를 놓친다면 역사가 영원히 소멸되고만다. 그들은 그 시대 국가와 민족, 그리고 향토를 위해 무엇을 했을까?라고 후손들이 살펴볼때도  떳떳한 조상으로 아니 위대한 선조로 기억되게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태화강을 숨쉬는 강으로 살리지 못하고 울산의 공해가 인간에게 끼칠 수 있는 최악의 경우에 빠지고 있었다면 한강의 기적을 누가 꿈꿀 수 있었겠는가? 누가 산업화를 위해 공단을 건설할 수 있었겠는가?

겨울철새가 많이 날아든다는 소식을 신문 기사로 알았을 때 나는 철새관찰에 나서 이 소식을 있게 한 김성수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스님의 신분으로 조류생태학을 전공한 이학박사이며 의지의 인물이다. 그가 말했다. "생태환경도시를 위하여 태화강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해준 울산광역시의 공입니다. 대단히 희망적입니다. 좋은 예감이 듭니다" 

김 박사가 말하는 좋은 예감이란 무엇일까? 담담이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머지않아 학이 날아들지 모른다는 뜻이었다고 짐작했다. 김성수, 그에게 좋은 일이란 늘 학! 그리고 그 다음엔 더 이상 말이 필요없지 않던가. 그리고 그는 불굴의 의지로 울산학춤을 개발한 예술인이다. 

나의 짐작대로 학이었으면 좋겠다. 천년세월을 두고 우리 고장에 번영을 있게한 신학성의 학! 부귀를 몰고 온다는 부(富)의 상징으로 길조가 된 그 새가 제 옛고향으로 날아왔으면… 이제 낙원으로 가꾸어 놓은 울산으로 날아와서 같이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 번영을 몰고 오는 새. 학이여! 어서 옛 고향으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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