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로의 봄

김장욱

비닐우산을 샀다
난 지금 닌자의 은신술을 보고 있다
어둠을 이용하여 몸을 숨기는
눈앞에 다가와서야 실체를 드러내며
단칼에 적을 향하여 일격필살의 공격
그러나 어찌 알겠는가
편의점에서 4,000원에 산 최강의 흰색 방패가
내 손에서 방어막을 형성하며
적의 공격을 적절히 막아내고 있음을
금새 편안한 맘에
이른 새벽길 출근이 즐거워 졌다.
적이 떨어뜨린 수많은 단검을 짓밟으며
승자의 기분을 만끽하며 하하하 웃고 있는데
아뿔싸! 적은 공세를 전환하여
투둑 투투투
음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나의 막강한 방패는 음파 공격을 막지 못하고
속절없이 뚫리기 시작했으니
금세 나는 최후의 방어선인 고막마저 점령당하고 말았다
투둑 투투투
아련한 추억 속으로 의식이 몽롱해지고
비와 함께 걷던 여인의 따스한 손길의 체온이 살아나, 금세
우울한 출근길로 바뀌고 말았으니
바닥에 흘러가는 적의 단검이 반짝이기 시작하고
저 봄비의 철장에 갇힌 한 명의 포로 패잔병이 되어
강제 노동 수용소인 봄 공장으로 끌러간다.

△ 김장욱 시인: 1967년 경남 거제 출생, 현대자동차 근무, 북구문학회 사무국장, '술 마시는 여자' '바통 체인지' '뭣같이 착!' 등 발표.
 

박진한 시인
박진한 시인

순간조차 확 잡아버린 치열한 전투적 서사로 시란 특수부대에다 핵폭탄 같은 변화의 폭탄을 투하해버린 봄의 시를 소개합니다. 시인은 많은 시를 쓰고도 얼렁뚱땅 시집을 출간하지 않은 시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공의 대단한 칼 솜씨로 기존의 틀에 과감히 난도질하는 형국입니다. 일찍이 행동적 표현시가 많이 있었습니다만. 치열한 표현과 공격성은 지금 같지 않았습니다. 마치 사자가 먹이를 앞에다 두고 달려드는 형국입니다. 거기에다 주문만으로도 모습을 감추는 닌자의 지혜 은신술도 사자가 사냥하기 위해 몸을 숨기는 형국입니다. 출근길에 내리는 봄비와의 전쟁 아닌 전투가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며 단돈 사천 원을 주고 우산을 준비한 사람이나 안한 사람과 같아지면서도 추억의 우군으로 결단코 같아지지 않는 시, 그 속에 힘이 있음에 앞으로도 개성 있는 놀랄 작품들이 쏟아질 것을 기대하며 독자들께서도 봄비와 맞서 싸우는 것보다 기억으로 함께 걸어가는 올해의 봄비를 맞아보시길 바랍니다. 2019년 봄에. 박진한 시인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