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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선 북구 아이돌보미

아이돌보미를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넘었다. 나이가 들면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추억하기도 전에 시간이 훌쩍 흘러가는 것 같아 요즘은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아이돌보미는 손주들을 4년간 돌봐준 작은 경력에서 시작됐다. 손주들을 돌보기 시작하면 노년의 여유로운 삶은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르고, 아이를 키워본 지 오래 지나 육아에 대한 자신감도 없었다. 하지만 큰 아들 내외가 좀 더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로 했다. 4년 동안 손주들을 돌보며 힘든 일도 물론 있었지만 손주들과 함께 한 시간은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손주들이 어린이집에 입학하면서 집에 홀로 있는 시간이 늘어나던 차에 북구청에서 실시하는 아이 돌봄 사업을 알게 됐다. 설렘과 걱정 속에 교육비를 지급하고 10일간 총 80시간이라는 양성교육을 받게 됐다.


마치 대학생이 된 것 처럼 수업도 듣고 점심시간에 맞춰 동료들과 점심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강사들의 열정과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들로 열흘은 금방 지나갔다. 교육을 통하여 비로소 정리되지 않고 흩어져 있던 나의 육아 경험과 지식들이 바로 잡히면서 정말 선생님이 된 듯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손주들을 돌보며 잘했던 점, 아쉬웠던 점들도 하나하나 정돈돼 갔다. 이후 실습도 마치고 현업에 뛰어드니 막막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낯선 아이의 엄마, 나를 처음 보고 울어 대는 아이, 서로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분위기, 우리 집이 아닌 남의 집이란 낯선 환경 등 결코 쉬운 게 없었다. 과연 내가 이 일을 얼마 동안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래도 손주들을 돌본 경험을 무기삼아 아이들과 친숙함을 빠르게 쌓아갔다.


내가 돌보고 있는 아이는 세 자매 중 둘째다. 둘째와 셋째는 쌍둥이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많이 낮아져서 문제라고들 하는데 젊은 부부가 이렇게 아이 셋을 낳고 열심히 살아가는 동안 내가 잠깐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이돌보미를 잘 선택했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처음 만난 건 태어난 지 90여일 되던 때였다. 또 다시 이렇게 어린 아이를 보니 신기하고 설레었다. 경험과 교육으로 다져진 나는 그 아이를 진심을 다해 돌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경계를 하고 낯설어 하는 아이를 보며 걱정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자기 할머니인줄 아는 것 같다. 이제는 아이들 집에 들어서면 반갑게 맞이해주고 헤어질 때는 아쉬워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퇴근하는 내 마음이 따뜻함과 흐뭇한 미소로 채워진다.


그런 아이가 이제 17개월이 되었다. 지금은 아이의 큰 언니도 함께 돌보고 있다. 하원을 할 때면 내 손을 꼭 잡고 이런 저런 얘기를 풀어놓는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지만 이제 좀 더 크면 헤어지겠지라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도 든다. 아이들도 그렇지만 아이돌보미를 신청하는 엄마와의 관계도 빠질 수 없는 어려움이다. 요즘 까다롭고 자기 아이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젊은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와중에 쌍둥이 엄마를 만나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 만족스럽고 아이돌보미 일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를 믿어주고 지켜봐 주는 아이의 엄마에게도 정말 고맙다. 남의 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며 '하찮은 직업을 가졌다', '경제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아들, 며느리도 무엇이 부족해서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느냐고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이 일을 시작한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하루 하루 시간이 알차게 지나가고 적지 않은 나이에 일을 해서 월급도 받으며 값진 행복을 얻고 있다. 요즘 뉴스를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관한 안 좋은 뉴스들이 나온다. 아이를 돌보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인데 양육에 대한 부담감으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실도 안타깝다. 나는 비록 늙어가지만 이 시대의 희망인 우리 새싹들이 좀 더 좋은 환경 속에서 성장했으면 좋겠다. 내 나이 예순. 인생에 또 다른 즐거움이 생길 것이란 희망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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