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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소리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아파트에
탕! 탕! 탕!
망치소리

시계가 걸리고
가족사진이 걸리고
희망도 걸릴
새로 이사 왔다는 소리

내 또래가 있을까?
후다닥 밖으로 나가 본다
 

 아동문학가 박해경

며칠 전 저녁이 다되어 초인종 소리가 들려 현관문을 열였더니 젊은 아주머니가 새로 이사 왔다며 "잘 부탁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온기가 가시지 않는 빨간 팥 시루떡을 내밀었다. 나는 오히려 "제가 잘 부탁합니다" 인사를 하고 들어왔다.
아주 오랜만에 겪는 일이라 얼떨떨하기까지 했다. 몇 층, 몇 호에 왔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떡만 받았구나 하는 나의 경솔함을 뒤늦게 알고 부끄럽다는 생각도 했다.
20층을 훌쩍 넘는 고층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떡을 해와 이웃들과 나누어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닐텐데 마음 씀씀이가 참 넓구나 생각하고 떡을 한입씩 맛있게 먹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이웃이 이사를 왔는지 갔는지 알기란 참 쉽지 않다. 고층 사다리가 높은 곳까지 올라가 이삿짐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으면 이사 갔는가 보다 이사 오는가 보다 주인은 보이질 않고 이삿짐 대형차들만 줄지어 서 있다가 사라지는 걸 느낀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시향 선생님 동시 망치소리가 마음에 와 닿는 것도 요즘에는 자주 느낄 수 없는 것이라 더욱더 그런 것 같다.


우리들이 뛰어놀던 골목길 줄지어 늘어선 집들 중에 누군가가 이사를 오면 반가워 이웃이 이사를 왔다며 구경도 하고 짐도 옮겨주고 새로운 친구가 궁금하기도 했다. 반면 이사를 가는 친구가 있으면 헤어지기 싫어 훌쩍거렸던 시절이 있었다. 스스럼없이 인사를 주고받고 며칠간 퉁탕거리는 망치소리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며 살았다.
사람 사는 소리라 생각하며 누가 왔을까? 어떤 사람들이 이사 왔을까? 궁금해하며 뛰어나가는 아이들을 굳이 막지도 않았다.


요즘은 망치소리 퉁탕거리며 낼 수도 없을뿐더러 못을 두드리며 벽에다 무엇을 걸 수도 없을 것이다. 굳이 걸고 싶다면 드르륵 가끔씩 들리는 드릴 소리 참 편하기도 하지만 망치소리에 비하면 인정머리 없고 메마른 깍쟁이 소리 같기도 하다.
내가 내는 소리가 아닌 남이 내는 소리는 왜 그렇게 크게 들리고 귀에 거슬리는지 경비실에서 당장 연락이 온다고 하니 참 야박하다.


귀를 막고 가슴으로 들으면 될 것 같다. 그 어떤 소리도 따뜻한 사람 사는 소리로 다가올 것 같지 않을까? 맛있는 떡을 잘 먹었으니 갚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 하면서 신혼시절 이집 저집 이사 다니던 시절을 더듬더듬 기억해 보는 시간을 오랜만에 가져본다. 가족사진을 걸고 시계를 걸며 그래 잘 살아 보자 다짐하던 그 아름답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아동문학가 박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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