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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다! 신규공무원 교육을 3일이나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들었던 생각이다. 교육기간 동안은 일터 밖으로 나가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치 봄 소풍을 떠나는 학생처럼 들떴다. 업무는 걱정 말고 많이 배워오라며 나의 빈자리를 선뜻 채워주신 선배님들의 배려와 격려를 받으며 '울산 중구 바로알기'에 참가했다. 첫날, 약사동제방유적전시관에서 집결했다. 그런데 공간지각능력이 남들보다 떨어진 탓에 집결지를 찾지 못하고 같은 곳을 뱅뱅 돌기를 여러 번이었다. 먼저 도착한 분들께 물어가며 찾아가니 드디어 보이는 집결장소. 늦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며 설레는 맘으로 들어섰다. 지금부터 3일 동안의 여정이 얼마나 고될지는 꿈에도 모르면서….


약사동 제방은 삼국시대 말에서 통일신라시대 초쯤에 축조된 것으로 당시 첨단토목기술의 정수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기록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기에 김제 벽골제처럼 '~제'라는 이름은 얻지 못했지만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사적 제528호로 지정되었다. 울산에서 그런 국가사적은 중구와 울주군에만 있다고 한다. 역시 울산의 원도심이라는 이름에 맞게 여러 사적지가 있구나 하는 생각과 자긍심이 생겼다. 그리고 사적지는 모르고 지나치면 사라져버릴 수도 있기에 잘 보존하고 지켜야하고 우리의 관심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공무원으로서 어깨가 무거워지는 듯했다. 


충의사와 구강서원은 비지정문화재로 민간에서 관리한다는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충의사가 세워진 장소는 임진왜란 때 조·명 연합군과 의병이 주둔하던 왜군과 맞서 싸운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 임진왜란 공신의 위패와 무명용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고, 그 후손이 이곳을 관리하고 있었다. 구강서원은 울산 최초의 서원으로 정몽주와 이언적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곳도 역시 구강서원보존회에서 관리했다. 내 앞가림하기도 버거운 요즘, 조상의 뜻을 기리고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나는 조상을 까맣게 모르고 살아왔구나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일었다.

특히 모두에게 소개하고 싶은 중구의 명소는 성남동 거리다. 해설사 선생님 덕분에 동헌 및 내아, 고복수음악살롱, 큰애기하우스, 시계탑 등 성남동 일대 거리들의 숨겨진 옛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옛날에는 동헌 앞의 거리가 시장이었고, 지금의 성남119안전센터 자리는 울산역이었으며, 동아약국 자리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다. 이런 설명을 들으니 도시의 거리가 옛 정취가 담뿍 담긴 고즈넉한 거리로 느껴졌다. 평범했던 거리가 옛 추억들과 오버랩되어 시간여행을 떠난 듯, 짜릿한 기분을 느꼈고 더 많은 사람이 느끼길 기대했다. 학성공원 탐방 때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성공원은 '왜성'이었다는 것. 그 순간 대학교 때 졸업여행으로 일본 후쿠오카의 구마모토성을 견학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구마모토성에서 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에서 식량과 물 부족으로 극심한 고난을 겪고 돌아와 성에 우물을 120개나 만들었다는 설명을 듣고 고소해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고초를 겪은 곳이 울산 중구에 있어 놀라웠다. 10년 전 일본여행이 현재와 이어지는 기묘한 경험. 역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또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흥미로운 일이 많음을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학성공원은 왜성을 김홍조 선생님이 정원으로 꾸며 울산시에 기증하면서 탄생한 곳인 줄도 몰랐다.


봄 소풍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교육에 참석했지만, 녹록치 않았고 알아야 할 내용은 너무나 무거웠다. 3일 동안 걸은 거리는 대략 40km로 7만보 정도, 체력은 떨어지고 있었다. 편하고 빠르게 버스로 지나갔다면 스칠 뿐이지만 한발 한발 발자국을 남긴 곳은 그 때 느꼈던 감각과 감정이 마음속에 새겨지기 마련이다. 천천히 걸어가며 한 곳 한 곳 음미하며 되새길 수 있어 값진 경험이었다. 길을 걸으며 문득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신규교육은 이렇게 끝났지만 진정한 공무원으로서의 여정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위 시의 구절처럼 봄과 같은 초심을 잊지 않고 중구를 아끼는 마음으로 묵묵히 스스로 사랑이 되어 나중에 맞이하게 될 후배를 위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선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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