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의 족보
일왕의 족보
  • 김진영
  • 승인 2019.05.0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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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편집이사 겸 국장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뒤를 이은 나루히토(德仁·59) 새 일왕이 공식 즉위했다. 일본에서는 공식 기록이 남아 있는 8세기 후반 이후 일왕으로는 역대 두 번째 고령에 즉위를 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역대 일왕과 연호 사전을 편찬한 요네다 유스케(米田雄介) 고베(神戶)여대 명예교수의 연구자료를 근거한 것이다. 이 자료를 근거로 하면 나라(奈良) 시대의 49대 고닌(光仁) 일왕(재위 770∼781년) 이후 몇 명을 제외하고는 생년월일 기록이 남아있다. 즉위 시 최고령은 고닌 일왕으로, 당시 60세 11개월이었다. 나루히토 새 일왕은 59세 2개월로 두 번째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퇴위한 아키히토 일왕으로, 1989년 즉위 당시 55세였다.


우리가 일왕으로 부르는 일본의 군주는 그들 방식으로는 천황이다. 역사적으로는 일본 전통 종교 신토의 주신인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를 숭배하는 교파의 대표였던 사람을 부르는 명칭으로 신의 영역에 있는 자로 숭배됐다. 일본이 군국주의를 강화하던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일본 제국의 대원수로 추대되기도 했지만 패전 이후 국가의 상징적 존재가 됐다. 일왕들은 대대로 '신의 후손'임을 자처해 왔다. 그들은 스스로가 초대 왕이라 주장하는 진무 덴노부터 26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졌다고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일왕의 신격화는 지토(持統)시대에 억지로 만들어낸 조작의 역사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 중이다.


특히 일왕의 계보는 백제계가 상당한 근원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일본의 아킬레스 건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사료를 보면 백제 의자왕의 여동생으로 일본 37대 왕에 올랐던 제명여왕은 본국 백제를 되찾기 위해 군선을 건조하고 탐라국에 참전을 요구하고 왜병을 사비성에 파견하지만 지도층의 내분으로 결국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제명여왕의 이름은 보황녀(寶皇女)이다. 보황녀(寶皇女)란 뜻은 황제의 여식(딸)으로 이름이 보(寶)라는 말이다. 제명여왕의 원래 이름은 부여보(夫餘寶)로 2번이나 왜왕에 오른 인물이다. 남편인 서명(舒明)왕의 뒤를 이어 황극(皇極 642~645)여왕이 되었다가 시동생인 효덕(孝德)왕에게 양위했다가, 효덕왕이 죽자 다시 제명(齊明 655~661)여왕에 오른다. 백제를 구원할 전쟁 준비를 하던 중 AD 661년 68세의 나이로 죽자 아들 천지(天智)왕(텐치 천황)이 그 뒤를 이었다.


또 일본 고대사에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한 번도 알려지지 않은 백제계 여왕이 존재했다. 바로 스이코 여왕이다. 스이코는 백제 왕족의 순수한 혈통을 이은 일본 최초의 정식 여왕이다. 스이코 여왕은 백제의 관륵스님을 초빙, 천문지리학을 일으켰는가 하면 한반도의 아악을 이식했다. 어디 그뿐인가. 고구려의 담징을 모셔 금당벽화 등 미술 문화를 일으켰고, 신라 진평왕의 환심을 사, 신라 불교도 도입했다. 그녀가 지금까지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것은 양국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새로운 일왕 즉위를 맞아 일왕의 족보를 제대로 살펴 알리는 작업이 양국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싶다. 편집이사 겸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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