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삼각
이인삼각
  • 울산신문
  • 승인 2019.07.1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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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선 수필가

신랑 신부가 마주 보고 섰다. 방글방글 미소를 띠고 새신랑을 쳐다보는 신부의 눈빛은 솜사탕이 묻은 듯 달콤해 보인다. 신랑은 화답 대신 이르게 핀 오월 목단처럼 연신 벙글댄다. 신랑 신부 사이에 꼭짓점처럼 서 있던 주례사가 찬물을 끼얹듯 그들의 미소를 돌려세운다. 짧을수록 좋다는 주례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축축 늘어져 긴 결혼 생활의 고단함을 미리 예견하는 듯하다. 

사랑과 행복만 가득할 거라는 설렘을 안고 언약 서를 읽는다. 신랑은 보증도 담보도 쓰지 않겠단다, 비위 약한 아내를 위해 분리수거도 자청한다, 아침밥 해주겠다는 신부의 화답에 하객들의 박수가 쏟아지고 있다. 변화된 시대상에 미소지으며 내 생각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딸이 결혼하던 날, 식순에 따라 축가를 불러야 할 차례가 됐다. 그때 누군가 나타나 삼류나이트클럽에서나 볼법한 반짝이 양복 윗도리를 사위에게 건네줬다. 사위는 재빠르게 돌아서서 금박이 달린 양복 윗도리를 걸치고 선글라스까지 낀 모습으로 마이크를 잡고 하객을 향해 섰다. 동시에 숙연했던 예식장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번쩍이는 조명과 함께 경쾌한 리듬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사위의 깜짝 이벤트에 예식장은 흥겨운 분위기로 변하고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로 채워졌다. 하객들이 하얀 이를 드러내놓고 웃고 있었다. 사위는 '무조건'이라는 당시의 유행가를 열창했다. 잠시 장모의 체신도 내려두고 신나게 노래하는 사위를 바라보며 노랫말처럼 무조건 내 딸만 바라보며 둘이 잘 살길 바라면서 살짝살짝 손뼉을 쳤다. 

큰언니 결혼식 날, 사모관대를 쓴 형부가 마당 멍석 위에서 기다리고, 수탉은 두 발을 묶인 체 붉은 닭 볏을 세우고 있었다. 큰언니는 화려한 혼례복을 입고 우리 세 자매가 쓰던 작은방 툇마루에까지 나와 울기만 했다. 큰언니가 우는 까닭을 분명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깨를 들먹이며 우는 큰언니 표정은 저문 강에 흐르는 적막 같았다.

그날 이후 뒤꼍 대나무 숲은 시집간 언니의 울음소리인 듯 자꾸만 우우 울어댔다. 사모관대를 쓴 형부와 하얀 절 수건을 두 손등에 올리고 족두리를 쓴 언니 모습은 지금껏 아린 풍경으로 저장돼 있다. 족두리에 딸린 구슬의 흔들림이 큰언니 인생마저 흔들어 놓을 듯 슬퍼 보였다.  

내가 신혼 때 연고 없는 서울에 가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은 쇳내를 풍기며 늘 녹초가 되어 들어왔다. 닳지 못한 성정에 타향살이의 외로움까지 묻어났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 즈음엔 연일 이어지는 회식으로 술에 절다시피 들어와 측은하던 마음마저도 사라지곤 했다. 남편의 고생을 훤히 알면서도 씹던 껌을 접어 버리듯 그 마음도 꼬깃꼬깃 접어 속으로 숨겨버리고 원망의 화살을 남편의 가슴에 쏘아댔다. 

아직 우리 부부도 경기 중이다. 결혼이라는 명분으로 발목 하나씩을 묶어 놓고 남은 두 발로 뛰어야 하기에 지금껏 기우뚱, 뒤뚱대면서 살고 있다. 더러 야속하다는 눈빛을 보이면서도 둘이 한마음이 될 때라야 원하는 방향대로 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다시 보폭을 맞추고 어깨 겯기를 반복하며 산다.

해맑게 방글대며 웃는 신부인 친구 딸이나, 무조건 잘살아 보겠다고 노래하는 내 사위나, 지옥에라도 가는 양, 가요 속 미아리고개를 넘듯 울며불며 억지 발걸음으로 간 큰언니 사연을 다 알지 못하더라도 둘이서 마음을 맞춰 삶의 꼭짓점을 향해 가는, 어금지금 비슷한 인생의 이인삼각 경기를 엮어 갈 것이다. 

열무 새순 같은 새내기 부부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서야 가능한 일이다. 혼자라 자유롭던 때와 달리 결혼 후의 삶은 두 사람의 다리 하나씩을 한데 묶어 어깨를 겯고 두 발을 다추며 같은 곳을 바라보며 뛰어야 한다. 뛰기 시작하면 경기 규칙도 요령도 둘이서 만들어 살아가야 한다. 

두 사람의 발목을 묶은 끈은 당기면 팽창되어 통증만 가중될 뿐, 느슨하게 양보할 때 긴장감을 풀고 발목을 움직일 수 있다. 팽팽하던 끈을 늘어뜨려 놔 줄 때 상대는 유순해질 게다. 상대의 몸짓을 배려하며 보듬어 안고 마음 맞출 꼭짓점을 향해 뛰어야 하는 결혼은 곧 이인삼각 경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