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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나는 말이 느리게 나온다/말하는 속도가 느려서가 아니라/말이 나오는 길이 너무 멀다/어떤 말은 나오다가 길을 잃어버리고/어떤 말은 슬그머니 사라진다/어떤 말은 거의 다 나왔다가 다시 안으로 줄행랑을 친다/어떤 말은 처음에 생겨날 때와 달리 엉뚱한 말로 바뀌기도 한다/작은 채로 태어나 작게 나가는 말도 있고/큰 소리로 태어나 개미 소리로 나오는 말도 있는가 하면/작은 소리로 태어났는데 큰 소리로 나와서 나도 놀랄 때가 있다//여기 있는 말들은 거의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말들이다/말 나오는 길에 몰래 숨어 있다/낚아챈 놈도 있고/올가미를 씌워서 잡은 놈도 있고/ 비눗방울처럼 조심스럽게 잡은 놈도 있다 안 터지게/덫을 놓아 잡은 놈도 있고/미끼 안 물고 도망치는 놈을 겨우 잡을 때도 있었다/우악스럽게 때려잡은 말도 있다//그것들을 햇살 아래 늘여 놓으니/이건 나물도 아니고/어포도 아니고/주전부린지/공깃돌인지/먹는 건지 뱉는 건지/쳐다보고 있으니 웃음밖에 안 나온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노래하는 김창완, 첫 동시집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에 나오는 머리말입니다. '방이봉방방'은 무엇일까요? 무지개가 뀐 방귀 소리랍니다.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을 것 같은 방귀 소리를 가수이자 시인은 아이들 웃음소리로 둔갑시킵니다. 방귀처럼 부끄러운 소리를 말이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말 줄임표를 따라 동심이 비눗방울처럼 터지는 소리를 만나 볼까요?

# 용서
엄마/나 학교 가다/길고양이도 용서하고/큰 트럭도 용서했다/자전거 타고 가는 누나도 용서하고/날아가는 새도 용서했는데/그때 구름도 용서했어요/"너 용서가 뭔지 아니?"/용서가 한번 봐주는 거 아니에요?

한 번 봐주는 것으로 용서하는 아이, 순수한 동심에서 참다운 용서의 의미를 찾아내는 순간입니다. 그동안 용서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시인의 말처럼 한 번 봐주는 건 어떨까요? 그러면 내 안에서 감성이 히죽 웃을 수도.

동시집 첫 장에 '얘들아~놀자'씨익 웃는 시인의 사인, '방이봉방방' 소리를 더 따라가 봅니다.

# 엄마가 숙제하라고 했는데 잠깐만 놀고 하려고 놀이터에 갔다가 미끄럼틀에서 넘어져서 이빨이 부러져 치과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어쩌다 이랬냐고 물어서 한 말

모아요
 

아동문학가 권도형
아동문학가 권도형

세상에서 제일 긴 동시 제목이라면 단연 일등일 것 같습니다. 내용 또한 짧기로도 일등일 것 같은데, 한 단어로 된 동시 내용은 재미를 넘어 유쾌하기까지 합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내면에는 '진짜 아파야 사랑이다'라는 말이 맴도는 것처럼,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모른다'가 아닌 '이미 모든 걸 안다'라는 말 줄임표 같습니다. 저 깊은 태초의 말의 샘물에서 두레박으로 맑은 말을 모두 길어온 듯합니다. 누구나 하고 싶었던 그러나 하지 못했던.  아동문학가 권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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