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선] 어제의 약속
[시인의 詩선] 어제의 약속
  • 울산신문
  • 승인 2019.08.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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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약속

조미희

당신 새끼손가락에서 라일락이 필 때
시간은 뒤로도 걸어요

천변 근처 언덕으로 뛰어갔지요
바람이 종아리 근처에서 회초리로 장난을 걸어요
어디서 온 걸까요
흔들리는 어금니 풍으로 깔깔거려요

당신 눈 가장자리가
아코디언처럼 접혔네요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와요
우리 키스할까요
라일락 꽃 시발시발 흩날릴 때
당신 몸이 주름에서
가시로 충만할 때까지

당신 새끼손가락에 라일락은 피지 않고
시간은 앞으로 걷네요

라일락꽃은 미리 피거나 미리 져서
손톱 밑을 찌르는 사월
그렁그렁 꽃잎 마르고
당신이라는 작자는 늘 그년그년 도망쳤지요

정신없이 찾은 라일락 아래서 나는
퇴폐의 향기로 늙어가지요

△조미희 시인: 서울에서 출생. 2015년 '시인수첩'으로 등단. 시집 '자칭씨의 오지 입문기'가 있음.
 

박성규 시인
박성규 시인

뜻하지 않게 약속을 어기게 됐다. 지난 번 시집에서 반딧불을 밝혀야겠다고 야심차게 약속을 했는데 아직 반딧불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영 약속을 어기고 말겠지만 새로운 시집 발간을 준비하면서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마음은 늘 불안하기 그지없다.
반딧불이는 개똥벌레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옛날에는 반딧불이가 개똥참외처럼 흔해서 개똥벌레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곤충 중 유일한 발광생물이며 몸길이는 4.5∼20㎜로 몸은 가늘고 길며 부드럽다. 촉각(더듬이)은 10∼12마디이고 배마디는 6∼7개이다. 대개 배마디 뒤끝에 발광기관이 있어 발광하지만 열은 없다. 발광하는 습성은 구애행동이나 짝짓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컷은 딱지날개(굳은 날개)가 있으나 암컷은 일반적으로 딱지날개와 뒷날개가 없다. 알·유충·번데기·성충의 과정을 거치는 완전변태를 한다. 유충은 육식성으로 다른 곤충이나 달팽이, 고둥류 등을 잡아먹는다. 세계적으로 약 1,900종이 기록돼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애반딧불이, 파파리반딧불이 등 8종이 기록돼 있다. 오늘날 반딧불이가 귀해져 보호종으로까지 지정된 까닭은 환경 개발로 서식지가 많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반딧불이가 많이 서식하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지역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반딧불이 보호에 힘쓰고 있다.


그런 반딧불이를 찾아 근래 밤마다 나섰다. 내가 반딧불을 밝힐 순 없어도 반딧불이는 밝혀줄 거라 생각하다 보니 몇 년 전에 근처 하천가에서 보았던 반딧불이가 생각나 초저녁 보다는 가급적 늦은 시각을 택해 찾아 나섰다. 많지는 않았지만 며칠 사이에 서너 군데에서 빛이 나기에 자세히 들여다 봤더니 아직 애벌레 상태로 풀섶을 기어 다니는 것이 아닌가. 곧 성충이 돼 날아다닐 거라는 생각에 흥분이 됐지만, 서식지가 1급수지역이다 보니 갈수록 귀한 몸이 돼 가지만, 근처에 반딧불이가 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성충이 돼 2주 정도 살다가 생을 마감할 반딧불이는 이슬을 먹고 살아간다는데 그런 반딧불이가 날아다닐 때까지 지켜 볼 수 있음을 다행이라 여기고 내가 밝히지 못하는 반딧불을 저 개똥벌레한테 부탁하고 싶다. 어제의 무모한 약속으로 인해 지나간 시간동안 지키지 못함을 늘 미안했지만 밤마다 반딧불이와 함께 맑고 청정한 지역에 같이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또한 감사한가.
 박성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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