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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3일은 울산시청 앞 중앙로의 지역 금융권에게는 운명의 날이다. 총 4조 원이 넘는 울산시 재정을 관리하는 금고지기를 새로 뽑는 날이기 때문이다.

올 5월 개정된 울산시금고 조례에 따라 계약기간이 종전 3년에서 4년으로 늘어나는 이번 시금고 지정이 유독 관심을 끄는 이유는 따로 있다. 광역시 승격 이후 22년간 사실상 BNK경남은행과 NH농협이 역할 분담을 통해 쌓은 아성에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전국구 시중은행인 KB국민은행이 첫 도전장을 낸 상태다. 새 경쟁자로 나선 국민은행은 울산뿐만 아니라 전국을 대상으로 지자체 금고 사냥에 나서고 있다.

예상치 못한 새 도전자 출현에 경남은행과 농협은 적잖이 당혹해하면서도 이번 방어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 경쟁구도가 바뀐 만큼 자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신청 준비단계에서부터 신청서 제출, 오는 23일 심사 프리젠테이션까지 상황을 관리하며, 대시민 홍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울산시는 이번 금고 지정을 통해 1금고와 2금고를 관리할 두 개 은행을 뽑는다.

울산시 일반회계를 비롯해 7개 특별회계, 13개 기금을 합쳐 총 3조5,000억 원(올해 당초예산 기준) 규모인 1금고에는 KB국민은행과 BNK경남은행이 신청했다. 또 상·하수도 공기업특별회계와 농어촌개발기금, 지역개발기금을 합쳐 모두 6,200억 원 규모인 2금고는 KB국민은행과 농협이 신청한 상태다. 각각 1개씩 단수 신청한 경남은행, 농협과 달리 국민은행은 첫 도전을 통해 두 개 금고를 독점하겠다고 나선 셈인데 도 아니면 모 식 전략이 통할지 주목된다.

이처럼 울산시금고 지정에 전에 없던 경쟁구도가 형성된 것은 국내 영업 여건의 악화와 함께 지방 이름을 간판으로 내건 은행이 있는 부산이나 대구, 광주 등과 달리 토종 은행이 없는 울산의 특수성이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풀이된다.

울산시도 새로운 경쟁구도를 의식해 시금고 선정절차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새 금고지기를 결정할 '울산시 금고지정심사위원회' 위원은 9명으로 구성되는데, 당연직인 행정부시장을 제외한 8명의 위원에 대해서는 사전 로비 차단을 위해 심사 하루 전인 오는 22일께 위원 선임을 통보할 예정이다. 심사위원은 공인회계사, 세무사, 변호사, 대학교수 등 전문가와 시의원, 3급 이상 공무원 등으로 꾸려진다.

금고지정심사위는 신청한 은행들의 대내외 신용도와 재무구조 안정성, 대출·예금금리, 주민이용 편의성, 금고업무 관리능력, 지역사회 기여도 등을 심사기준으로 정량 및 정성평가를 통해 최종 금고 은행을 낙점하게 된다. 제시한 금리는 높고, 지역사회공헌 사업에 쓰일 협력사업 기금은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받겠지만, 배점기준이 종전에 비해 낮아졌기 때문에 결정적인 변수는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는 신용도와 재무구조, 주민 편의성, 금고관리 능력에서 금고의 향방이 갈라질 것으로 보이는데, 거대 시중은행인 국민은행은 신용도나 재무구조는 상대적으로 좋지만, 주민 편의성과 지역사회 기여도 측면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경남은행과 농협은 지난 20여 년간 시금고를 양호하게 관리해왔고, 지역사회에 적지 않은 공헌사업을 펼쳐온 점과 지점·점포망이 시중은행에 비해 월등한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금융권이 이번 울산시금고 지정에 주목하는 이유는 새로운 경쟁구도에 있지만, 오는 23일 시금고 관리기관으로 지정되면, 그 결과가 앞으로 남은 각 구·군의 금고 지정에도 직결된다는 점이다. 이번 달 울산시에 이어 5개 구·군 중 지난해 농협이 금고를 차지한 남구를 제외한 중구와 동구, 북구, 울주군의 새 금고 선정이 다음 달까지 이어진다.

이들 지자체의 올해 예산 규모를 고려할 때 무려 7조 원이 넘는 거대 자본을 관리권을 어느 은행이 차지할지 금융권은 물론 지역사회의 이목이 쏠린다.  최성환기자 c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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