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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태가 인심까지 바꾼다고 하더니 갈수록 우리의 전통예식이 옅어지거나 사라지고 있어 아쉬움을 더 하고 있다. 불과 십 수 년 전만 하더라도 명절이면 고향마을 어른들을 찾아뵙고 세배를 올리는 일은 통과의례로 간주되었다. 여기다 또래들끼리도 친구들 부모를 일일이 개별 방문해 세배를 올리고 덕담을 주고받으며 한 해를 시작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마을 어른들보다 처갓집 찾아가는 길이 우선되었고, 심지어는 차례를 아예 외국에서 보내는 것도 다반사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보니 명절 연휴라도 함께 보내려는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세태가 변하면 인심도 변한다는 것이 결코 흘려들을 말이 아니라는 것을 실증하는 셈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가슴 한 구석에는 이 모든 것들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면서도 공허감을 떨칠 수 없다. 차례 지내기 무섭게 처갓집을 가겠다고 나서는 아들 며느리, 손자들을 그저 멀뚱히 바라봐야 하는 '아들 가진 부모들'이다. 이런 세태에 전통문화도시 강원도 강릉지역에서는 설을 맞아 각 마을별로 어른들께 합동 세배를 드리는 도배식(都拜式)이 열렸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촌장을 모시고 하는 함께 하는 합동 도배식이 19일 오전 성산면 위촌리 전통문화전승관에서 촌장인 이대기(91)옹을 모시고 출향 인사와 마을주민 등 2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조선 중기인 1577년 마을 대동계를 조직한 이후 지금까지 400여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 마을 도배식은 매년 설 다음날 주민들 대부분이 갓과 도포 등 의복을 차려입고 촌장을 비롯한 마을 어른들께 합동세배를 올리는 행사로 강릉지역 마을 도배식의 근간이 돼 왔다. 주민들은 촌장에게 존경의 표시로 술, 담배 등을 선물로 드리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마을과 가정의 안녕 등을 기원했고 촌장은 '새해 복많이 받고 건강하시라'는 덕담을 건넸다. 그동안 이 마을 합동 도배식은 촌장댁 마당에서 이뤄졌으나 작년부터는 전통문화전승관에서 열리고 있다. 설 명절 강릉지역에서는 사천면 석교1리, 주문진읍 교항2리, 왕산면 도마2리, 성산면 위촌리 등 20여개 마을에서 도배식이 열렸다. 그러나 도배식이 열려야 할 곳은 정작 울산이다. 올 설을 끝으로 정든 고향땅을 떠나야 할 마을에서 최소 이 정도의 의식쯤은 있을 것으로 봤다. 혁신도시로 집단이주해야 하는 중구 원유곡, 장현, 원약마을과 국립대 부지에 편입된 울주군 언양읍 반연리 마을 어디에도 이런 소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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