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세기 넘게 지속되어 온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도 평화의 기운이 오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어떤 타협이나 절충도 통용되지 않을 것 같았던 미-북 간의 움직임이 급변하는 추세다. 여기에 어떤 복선이 있는지는 몰라도 이를 지켜보는 당사자인 우리로선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과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로 평가되는 6자회담 '2.13합의'가 도출되고 이와 맞물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남북 당국간 대화 역시 '휴면기'를 지나 본격화할 채비를 갖췄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한국과 미국의 고위 당국자들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은 물론 평화체제를 위한 다자간 포럼 구상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1953년 정전협정을 파기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다자간 협상채널도 조만간 가동될 조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능성 저편에 있던 난제들이 어느덧 충분히 협상 가능한 문제로 탈바꿈하고 있는 양상인 것이다. 지난 13일 끝난 제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에 참가한 한 관계자는 "미국과 북한의 변화된 모습에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의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다른 나라 대표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방코델타아시아(BDA)와 관련된 금융제제 문제를 30일내에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김계관 부상 등 북한 대표단은 한국측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태도에서 진정성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 대표단의 모습을 보면서 '제발 미국의 마음 이 바뀌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서로 '신뢰할 수 없다'고 되뇌어온 양측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워싱턴과 평양 수뇌부의 전략변화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특히 워싱턴의 입장은 2002년 10월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이유로 제네바 합의를 백지화했던 것과 비교하면 180도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후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거부하던 강경노선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6자회담의 틀내'라는 명분을 걸긴 했지만 지난달 베를린 북-미 회동은 6자회담이 열린 이래 처음으로 중국의 중재 없이 이뤄진 사실상의 미-북 직접협상이었다. 미국의 이 같은 변화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참패와 이라크 상황과 중동사태의 악화 등으로 부시 행정부의 입지가 좁아진 상황과 긴밀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경위야 어떠했던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것 자체로 환영할 일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