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국 각지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곤혹스러운 질문을 받는 일이 자주 있다. 그 질문은 대개 "울산은 여유가 있지요?" "울산이 부럽습니다"라는 식의 경제상황에 대한 일방적인 평가와 진단이다. 전문가 그룹들이 이정도이니 일반인들의 울산에 대한 인식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인식과 현실의 괴리감을 설명하고 싶지만 스쳐 지나가는 자리에서 정부의 '울산 홀대'를 설명하기란 쉽지도 않고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다. 그래서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으레 쓴웃음 정도로 그치기 마련이다.


 사실 울산의 국가재정 기여도는 전국 최고수준이다. 전국 7대 도시의 국세부담 및 의존재원 확보액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울산은 한 해에 7조원이 넘는 돈을 국세로 납부해 국가재정 확충에 기여하고 있지만 국고 보조금으로 지원 받은 액수는 3천억여 원에 그치고 있다. 세금은 많이 냈는데 돌아오는 혜택은 '쥐꼬리'만큼 이란 얘기다. 물론, 국가 전체 경영차원에서 보는 것과 지방자치 단체의 기대치에서 희망하는 것이 일치할 순 없다. 문제는 국세 부담액 대 국고보조 비율이 광역시 평균 23%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울산 홀대'는 푸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잘사는 도시인' 대접을 받는 울산은 수치상으로 보면 잘사는 도시가 맞다. 소득 4만불 시대를 앞서가고 있는 도시이다 보니 갈수록 후퇴하는 삶의 질 때문에 고민하는 지역에서는 부러워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그 '잘사는 도시'라는 인식의 객관적 평가와 그에 따른 합당한 위상을 울산이 차지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올해만 해도 국가예산 확보 부문에서 울산은 여전히 홀대를 받았다. 전국 최고의 재정부담에도 불구하고 울산은 광역시 가운데 꼴찌 수준의 예산을 배정 받은 상태다. 단적인 예로 미래성장의 핵심 기능을 담당할 자유무역지역 관련 예산은 요구액의 7%만 배정받는 수모를 겪었다.


 지난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은 대한민국 최초의 공업특구인 울산에서 '공장의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뻗어나가는 그날, 국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고 선언했다. 박의장의 예언대로 '검은 연기'는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견인했다. 40년 후 울산은 대한민국의 선진화의 일등공신이라는 평가와 무관하게 많은 것을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태화강엔 썩은 물이 흘렀고 공기와 땅은 오염돼 고향을 잃은 주민들과 지도가 바뀐 산하는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남았다. 이 땅이 원시 선사시대 이후 한반도의 역사가 시작된 땅이라는 사실이나 신라 천년의 찬란한 문화의 생산 창고였다는 사실은 덮이고 뭉개지고 망각한 채 '성장'의 이름으로 보상하는 분위기였다.


 오염의 땅을 복원하고 썩은 강을 살리는 일은 정부가 주도하지 않았다. 시민과 지자체가 하나되어 미래 울산을 위해 힘을 모았고 정부를 설득하고 기업을 다독여 오염의 땅을 생태환경의 땅으로 바꿔갔다. 10여년의 세월동안 울산시민들은 태화강을 '오염의 강'에서 '생태환경의 강'으로 만드는 쾌거를 이룩했다. 썩은 강이 성장의 상징이라 외치던 중앙정부는 이제 태화강이 4대강 사업의 모범이라고 말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그 뿐이다. 울산에서 태화강에서 미래를 배우자는 정부의 외침은 외침일 뿐 내년도 예산은 여전히 '울산 홀대'를 유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심의를 통과한 내년도 울산 관련 국가예산은 모두 1조6,835억원이다. 수치상으로는 지난해보다 늘었다고 하지만 이 같은 예산은 울산시가 요구한 2조8,415억 원의 59%에 불과하다. 특히 자유무역지역 개발은 요구액의 7%인 95억 원만 반영됐고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은 354억원 요구에 고작 10억원, 울산과기대 예산도 요구액의 57%만 반영됐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울산시가 KTX 개통에 맞춰 사통팔달이 광역 교통망을 구축하려는 야심찬 계획도 당분간 접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울산과 포항, 울산과 부산간 복선전철화 사업이 각각 요구액의 20%와 56%만 반영됐으며 KTX건설과 함양~울산 고속도로 건설도 50% 안팎이 반영됐을 뿐이다. 정부의 예산에서 울산의 미래 동력을 위한 기본투자시설의 사업비는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정부의 시각도 문제다. 자유무역지대나 오일허브 같은 굵직한 국가사업은 국가경제와 직결되는 시급한 현안인데도 마치 지역여론을 감안해 최선을 다했다는 태도는 지역균형발전의 의지가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정부는 앞으로 '울산을 배우자'거나 '태화강을 모범으로 삼자'는 발언을 삼가해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중앙정부나 각 부처에서 심심하면 들먹이는 '태화강' 관련 발언에 지적재산권을 붙여 글자 한자마다 일정 금액의 사용료를 받고 싶은 심정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