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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언론재단의 언론사 실국장단 연수의 기회가 생겨 독일 함부르크를 다녀왔다. 독일의 제2도시 함부르크는 중세부터 항만물류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9세기 들어 조선산업의 발전과 히틀러의 잠수함 건조특명으로 조선업은 함부르크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연합군은 함부르크 항만을 철저하게 파괴해 과거의 영화는 잿더미가 됐다. 하기야 독일의 대부분 산업시설이 연합군의 폭격에 희생됐기에 함부르크만의 특별한 사정도 아니다. 바로 그 함부르크가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과거 독일은 분단국가라는 공통점 때문에 우리의 좋은 성장모델로 통했다. 필자가 독일을 방문했을 무렵이 바로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맞는 시기여서 독일 언론들은 대부분 통독 20주년을 기념하는 보도를 하고 있었다. 1989년 11월 9일 저녁 7시. 동독 공산당 선전 담당 비서 귄터 샤보브스키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장벽붕괴는, 사실 공식화라기보다 우발적인 시민들의 행동으로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날 이후 독일은 새로운 독일을 위해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했지만 이제는 '감성적인 통일'보다 '현실적인 국익'에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었다.


 바로 그 국익의 중심이 함부르크다. 함부르크는 통일 이전까지 독일 최대의 도시였다. 물론 과거 북유럽의 상업중심지였던 명성은 사라졌지만 전후 복구사업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 덕분에 세계 5대 물류항의 명성을 유지하던 곳이 함부르크였다. 함부르크는 해항(海港)아닌 강항(江港)이다. 엘베강 하구에서 무려 110km 상류에 위치해 있는 물류항이 함부르크다. 베를린에 이은 독일 제2의 도시로 일찍이 13세기부터 한자동맹의 맹주로서 노르웨이, 네덜란드, 영국, 이베리아반도 등과 거래했다. 함부르크 증권거래소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되었음도 이 같은 해상력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독일의 해양력은 두말 할 것 없이 후발주자다. 북해무역의 주도권을 확보하던 중세시절이 지나고 함부르크가 세계사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역시나 빌헬름황제와 비스마르크의 시대이다.


 비스마르크의 시대에서 히틀러의 시대를 넘어온 독일의 해양력은 이제 바다녹색도시로의 전환으로 방향을 잡았다. 오늘의 함부르크의 실험과 도전을 우리가 유심히 지켜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녹색혁명, 친수공간, 항구재개발, 문화적 항구건설, 자전거 중심도로, 전통문화의 보존노력 등 지금 울산이 하고 있는 고민을 그네들도 똑같이 하고 있다. 더구나 강을 이용한 친수공간과 전통문화의 결합, 그리고 엘베강의 접근성을 예술문화로 승화하려는 다양한 실험은 울산시의 태화강 개발에 모델이 될 만 했다.


 함부르크는 경제, 관광, 문화 중심도시로 변모를 꾀하는 중이다.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된 대역사 하펜시티(Hafencity)가 바로 그 중심이다. 157헥타아르 수변공간에 대학과 연구기관 디자인센터, 과학센터, 크루즈센터, 마르코폴로 광장, 전통선박항구 등이 들어섰거나 건설 중이다. 항만의 낡고 퇴락한 시설공간에 최첨단건축물을 세워나가며 녹색정치의 본산답게 지극히 환경친화적인 수변공간을 제시한다. '녹색과 메트로폴리탄건설'을 동시에 견지해나가겠다는 것이 하펜시티의 기본 전략이다.


 함부르크는 물의 도시다. 함부르크는 베네치아보다 물이 많은 도시지만 물을 잘 관리하는 도시로도 손꼽을 만하다. 도시의 중심은 알스터 인공호수다. 호수를 둘러싸고 행정시설 및 관광위락, 주거시설 등이 들어섰다. 호수는 운하를 통하여 그대로 엘베강으로 연결되며, 엘베강을 내려가면 북해에 닿는다. 친수공간의 절대적인 강조는 함부르크의 최대 강점이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그만큼 많은 자연적인 수변공간에도 불구하고 도심의 한가운데를 대규모 인공호수로 만들어 도심과 친수공간을 조화하려고 애를 쓴다는 사실이다.  

 
 함부르크나 울산 모두가 조선업을 기반으로 한 도시다. 산업으로 성장한 도시이기에 부를 누리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문제는 함부르크가 공장의 새로운 유치보다 기존의 산업에 부가가치를 키우는 방향으로 성장모델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업의 경우 고부가 선박을 만들고 이를 디자인하는 종합적인 시설을 유치하는 식이 그들의 미래 동력이다. 이는 아마도 항구 바로 옆에서부터 도심에 이르는 곳곳에 무수히 산재한 박물관과 예술가들의 창작을 위한 공간,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기업들의 기부제도가 바탕이 됐다는 느낌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벌이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담고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강조되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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