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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선거를 한 달 여 앞두고 울산지역 기초단체장 후보군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지방자치 실시 이후 기초단체장은 지역 발전을 위해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숱한 비리의 온상으로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자리가 됐다. 울산도 예외가 아니다. 군수와 구청장이라는 자리는 한 지역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는 중책이다. 하지만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면 지역의 미래를 담보로 자기희생의 실천을 보여준 사람보다 출세의 상징처럼 단체장의 명함을 사용한 이들이 더 많았다. 심지어 울산의 경우 특정 지역은 단체장이 비리와 독직사건으로 잇달아 영어의 몸이 되는 지경까지 이르기도 했다.


 한 지역의 단체장은 지역발전의 구심점이자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지방자치제 실시로 주민이 직접 단체장을 뽑는 선출직의 경우 과거의 임명직 보다 권한과 역할의 비중이 커졌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지방자치는 정당의 공천놀음에 매몰돼 실질적인 지역민심의 반영이 어려운 구조로 짜여져 있다. 문제는 정당의 공천권이 아니라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들의 의식이다. 그들은 기초단체장을 공천할 때마다 언제나 '민심'과 '인물론'을 기준점으로 최선의 선택을 내세우지만 이미 아무도 그들의 이 같은 기준을 믿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선거에서도 울산의 국회의원들은 공천권을 '전가의 보도'인양 휘둘렀다. 기초단체장은 물론 시군구의원들까지 새로운 인물론으로 대대적인 물갈이에 나섰지만 지역을 위한 인물교체인지 다가올 국회의원 선거를 겨냥한 인물교체인지 뒷맛이 그리 개운치는 않다. 


 조선시대 관리를 임명하는 절차 가운데 서경이라는 제도가 있다. 서경은 관리를 처음 임용할 때 대간에서 심사해 동의해 주는 고신서경(告身署經)과 예조의 의첩을 거친 의정부의 의안에 대해 대간에서 심사하여 동의해 주는 의첩서경(依牒署經)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이 제도는 임명되는 당사자의 허물은 물론 친가, 외가, 처가의 4대조까지 살펴보고 가부를 결정했다. 임금이 임명했더라도 50일 안에 서경을 통과하지 못하면 인사를 다시 했다. 고려 때는 더 엄격해 1~9품의 모든 관리가 서경을 받아야 했다. 임금의 인사권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엄격한 검증장치를 뒀던 셈이다. 사후관리도 철저했다. 관리가 부임한 뒤 불법으로 재물을 취득하는 등 죄를 지으면 천거한 자도 연좌해서 처벌했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유명무실해졌지만 적어도 조선 초기 인사제도의 기본 원칙은 그랬다.


 조선 초기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태평성대를 만든 기초가 바로 서경이었다. 물론 조일전쟁 이후 극도로 문란했던 사회질서는 바로 서경의 유명무실화에서 비롯됐고 지방 수령의 도덕적 해이가 국권을 흔들 지경이었다. 바로 이 무렵 지방관의 폐단을 현장에서 본 다산이 지방 수령을 향해 호령한 책이 목민심서다. 다산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요즘의 수령이란 자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급급하고 어떻게 목민해야 할 것인가는 모르고 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곤궁하고 병들어 줄지어 쓰러져 구렁을 메우는데 목민관들은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바로 이 같은 일성이 목민심서의 저술 동기다. 타락한 수령들의 백성 침해 현장을 목격한 다산은 그 개선이 자기 능력 밖의 사실인 줄 알지만 지면(紙面) 위에서나마 개혁의 의지를 펼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목민심서에서 다산은 "군자의 학문은 수신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목민"이라고 했다. 율기 편에서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은…제 피땀으로 얻은 것을 쓰니 하늘이 너그럽게 볼 것이요, 부귀한 사람은 벼슬을 하여 녹을 먹되 만민의 피땀을 한 사람이 받아 쓰니 하늘이 그 허물을 경계하는 것이 더욱 엄중할 것이다"라고 했다. 고위 공직자라면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할 대목이다.


 목민심서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희망제작소 박원순 박사는 다산의 생각을 단체장의 10계명으로 풀었다. 첫째, 청렴하면 탈이 없다. 둘, 좋은 인재를 구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셋, 단체장이 공부하는 만큼 지역은 발전한다. 넷, 잘 설계된 밑그림, 10년을 좌우한다. 다섯, 선택과 집중, 리더십의 핵심이다. 여섯, 창조적 대안 없이 지역의 미래 없다. 일곱, 겸손한 단체장을 싫어하는 사람 없다. 여덟, 기초의회와 시민단체는 동반자다. 아홉, 주민참여가 지역발전의 원동력이다. 열, 재선 생각을 버리면 재선 그 넘어가 보인다.


 수령의 직분을 다하려면 덕과 위엄이 있어야 하며 밝은 정치를 펴겠다는 뜻과 잘못된 것을 살펴 헤아릴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한다. 수령이 제 할 일을 다 못할 경우 백성이 괴로움을 당하고 길바닥에 쓰러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비난이 따를 것이며 귀신들이 책망을 할 것이니 그 화가 후손들에게까지 미칠 것이다. 그러니 어찌 쉽게 수령이 되려 하겠는가. 지방 수령의 책임과 역할을 고민한 다산의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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