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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판을 지켜보다 보면 "멀쩡한 사람, 바보 만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여기에 발을 들여 놓지만 않았다면 누구보다 넉넉하고 품위 있게 노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선거로 하루아침에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온 동네 흙탕물이라는 흙탕물을 혼자 다 뒤집어쓰고도 개표 결과가 나오기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평소 같으면 하라고 해도 하지 않았을 만용과 옹고집에 갇혀 있다. 여기다 한술 더 뜨는 것은 세상인심이다. 공천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 사람을 공천 안주면 누구 공천을 주겠느냐"고 열을 올리던 지지자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고 있다. 이들에게 왜 이렇게 싸늘해졌느냐고 하면 "한계를 넘지 못하는 걸 어쩌겠느냐"고 한다. 정말 하기 쉬운 말이다. 그 한계를 공천 전에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실망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저런 인연으로 거들어주다 접게 됐다는 것인지 그것도 분명치가 않다. 이들에게 "태어난 날은 달라도 죽는 날은 함께 하자"며 의형제의 결의를 맺고 삼국의 한 축을 평정했던 유비와 관우, 장비의 의(義) 따위가 보이기나 하겠는가. 누구 말대로 의리라고는 파리 뭐 만큼도 없으면서 울산을, 세상을 바꿔보자고 떠들어대는 족속들이 그저 가소롭다.
 남의 말을 하기란 정말 쉽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이를 먼저 물어보고 입 밖으로 내는 것이 남자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을 떠나 말에 서푼어치의 무게라도 실리게 하는 길이다. 울산을 텃밭으로 하는 한나라당에 불던 지방선거 공천바람은 끝이 났다. 엊그제는 이들이 한데 모여 필승결의대회까지 했다. 이들 중 일부는 벌써 당선증이라도 받아든 냥 의기양양했고, 서로가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기에 바빴다. 그러나 과연 낙천자들에게 한 점 부끄럼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이들 가운데 얼마나 되겠는가. 출마여부를 두고 고민하던 사람에게 괜히 희망을 갖게 하는 언질을 주지 않았는지, 또 공천을 주지도 공천에 도움을 주지도 않을 거면서 너스레를 떨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부처님 말씀에 말(言)로 지은 업(業)이 가장 무겁다고 했다. 공천을 신청했다가 공천장은 고사하고 쪽박마저 깬 '탈당파' 무소속 후보들의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한 순간부터 한나라당은 오직 이겨야 할 대상으로 바뀌었다. 조직적인 방해와 낙선운동도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고 표를 줄 민심(民心)이 호의적이라 생각할 수도 없다. 변화와 개혁을 모르는 당심 못지않게 민심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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