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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지정한 '세계 정신건강의 날'이다. 신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환기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제정됐다. 삶의 수준이 향상되면서 현대인이 겪는 여러 가지 정신질환들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특히 최근 일상 속 공포가 되어버린 '묻지마 폭행'이 잇따르고 있어 정신건강에 대한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묻지마 칼부림' 같은 폭행사건을 저지른 이들은 대개 조현성 인격장애나 우울증 진단을 받은 전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치료 중단 후 망상에 시달리다 범행을 저지른 경우가 허다하다는 게 전문가의 판단이다. 제때 치료받지 못한 정신질환자가 일으키는 범죄는 언제든 또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어서 우려를 더한다. 실제 중증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는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정신질환 범죄자 재범률 67%…사소한 폭력이 방치돼 살인으로 이어져 
 정부 자료에 따르면 정신질환 범죄자들의 재범률이 66.7%나 된다. 처음에는 사소한 폭력행위를 하던 것이 치료 없이 방치돼 묻지마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게다가 정신질환자가 중증이 되면 가족에게 맡긴 돌봄 부담이 극대화될뿐만 아니라 범죄 발생 가능성도 더욱 높아진다. 환자의 가족이 위험에 처하는 일도 빈번하다. 

 문제는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일이 오롯이 가족의 몫으로 남게되면서 환자들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중증 정신질환자 3만9,927명 가운데 퇴원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외래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는 1만4,638명(36.7%)이었다. 중증인 만큼 계속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같은 해 외래치료 명령이 내려진 사례는 28건뿐이었으며 그 전해(2020년)에는 8건이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서울과 부산, 경기 등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시·도에서는 외래치료 명령이 한 건도 청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래치료 명령은 정신질환을 앓는 이가 자신이나 타인을 해칠 경우 강제로 치료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정신병원이 청구하면 지방자치단체 산하 정신건강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환자에게 최장 1년간 외래치료를 명령하고 치료비도 지원한다. 그런데도 이 제도가 그동안 실효성이 없었던 것은 정신건강보건법이 환자의 인권을 지나치게 강조한 탓도 없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를 판단하는 기준을 가족 등 보호자나 의료계 일선에게 떠넘기기 일쑤다. 결국 자해나 타해로 강제 입원 이력이 있는 환자에게만 명령이 적용되면서 결과적으로 적극적인 환자 입원 치료의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중증환자 전문가 자문·사법기관 판단으로 입원 시키는 제도 도입 시급
 보건복지부와 법무부 등이 지난 8월 전담팀(TF)을 결성해 법관이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키게 하는 '사법입원제' 추진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현행 대응 체계의 한계점을 보완하려는 취지로 읽히는 이유다. 환자의 인권이 중요하더라도 묻지마 피습 사건이 잇따르는 참혹한 현실을 감안하자면 불가피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사회적 합의를 거쳐 사법입원제를 도입하더라도 인프라가 확충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턱없이 낮은 진료수가와 의사 이탈 등으로 당장 병실이 태부족인 게 현실이다. 강제 입원이 까다로워진 지난 6년간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상급종합병원의 폐쇄병실은 80%나 줄어 지금은 300개도 안 남았다고 한다. 의사가 부족해 폐업 위기에 몰린 정신병원들도 많다. 이대로는 정신질환 응급환자가 있어도 입원을 못 해 '뺑뺑이'를 도는 사태가 빚어질 게 뻔하다.

 더욱이 정신질환자와 가족들에게 격리가 끝이 아니라 치료를 거쳐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신뢰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퇴원 후 외래치료와 재활까지 의료서비스 전반의 국가 관리체계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강화돼야만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중증 정신질환자만큼은 전문가 자문과 사법기관 판단으로 입원을 시키는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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