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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온 수필가
이다온 수필가

무대 조명이 꺼지고 객석에 불이 켜진다. 숨죽이며 집중하던 사람들이 무장해제 되어 썰물처럼 공연장을 빠져나간다. 장내가 잠시 소란해진다. 저마다 공연과 배우에 대한 소감을 말하며 짧은 휴식을 취한다. 인터미션(intermission)이다. 

 인터미션은 막간이라는 뜻으로, 연극, 콘서트, 오페라, 뮤지컬 등의 공연 중간에 주어지는 쉼의 시간을 뜻한다. 

 공연이 주로 2~3시간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잠깐의 휴식을 두는 것이다.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과는 늘 비슷해서 어느 날부터 무료함이 찾아왔다. 그러다 조금씩 버티기 힘들 만큼 체력이 나빠졌다.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된 어느 날, 인터미션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또 다른 나를 찾기 위한 숨 고르기를.

 시간이 맞지 않아 찾지 못했던 박물관에 갔다. 경주며 대구 등 가까운 곳을 하나씩 둘러보면서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 국내에 있는 유적지를 다녀보고 싶은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 나의 휴식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거야.

 고민 끝에 역사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공부를 하면서 문화답사도 함께 하게 되었다. 여러 유적지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했던 나에겐 일석이조의 기회였다. 조금 분주해졌지만 오히려 마음엔 여유가 찾아왔다. 

 스웨덴 말에 '스몰트론스텔레'는 딸기밭이다. 여기서 딸기밭은 자기가 좋아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거나 혼자 있고 싶을 때 찾는 곳이다. 살다 보면 누구든 잠시 쉬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혹은 일상으로부터.

 집에 오래된 프린터가 있다. 흑백만 가능한 아날로그이다. 바꿔야지 마음먹다가도 인쇄 기능엔 무리가 없어서 계속 사용하고 있다. 프린터는 많은 분량을 출력할 때면 늘 15매 내외의 정도에서 잠시 멈춘다. 그 사이 새로 용지를 보급하면 기다렸다는 듯 다시 작동을 한다. 저도 휴식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리라. 낡은 기계의 숨 고르기라 생각하면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터미션의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9세기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 조지아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랑과 전쟁, 생존 투쟁을 그린 대하소설이다. 그 시절 남부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무도회를 맘껏 즐기기 위해 낮잠을 자는 풍습이 있었다. 긴 축제 전, 충분히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공연이 중단된 순간에도 배우는 그저 쉬지만은 않을 것이다. 잠시 무대를 떠났을 뿐, 다시 오를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어쩌면 이전보다 더욱 치열할지도 모른다. 보통 15~20분 정도의 인터미션은 공연 전체 러닝타임에 포함된다. 중단이나 정지가 아니라 새로운 준비인 셈이다.  

 2부가 곧 시작되니 자리에 앉으라는 방송이 들린다. 다음 장면들은 어떻게 펼쳐질까 궁금해하며 친구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눈다. 

 무대가 밝아지면서 배우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뮤지컬 '맘마미아'는 보는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든다. 도나와 타냐, 로지의 '댄싱 퀸'이 장내에 가득 울려 퍼진다. 이다온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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