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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이 개발한 잠수함의 설계 도면이 대만에 통째로 유출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유출된 도면은 대만 정부의 첫 자체 잠수함 '하이쿤' 개발에 상당 부분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한화오션 근무 당시 도면을 빼돌린 뒤 국내 잠수함 컨설팅 업체로 이직한 한화오션 전 직원 등 두 명을 기술 유출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해당 컨설팅 업체도 함께 입건했으나 대표 및 직원 상당수가 대만에 있고, 대만 정부의 협조도 잘 이뤄지지 않아 수사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20년간 552건 피해액 100조 넘지만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
대만으로 넘어간 잠수함 설계 도면은 2,000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알려졌다. 바로 구 대우조선해양이 2019년 인도네시아에 1조 1,600억원에 3척을 판매한 'DSME1400' 모델이다. 한화오션이 세계 다섯 번째 잠수함 수출국으로 만들었다며 자랑하던 수출형 잠수함 핵심 기술의 유출은 우리나라 국방과 조선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잠수함 건조기술은 조선사는 물론 해군 국방과학연구소 등 민관군이 합심해 수년간 애써 이룩한 소중한 국가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앞서 한화오션은 2016년 한 차례, 2020년과 2021년 각 한 차례씩 총 세 차례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해킹으로 방산 기밀자료가 대거 유출돼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정부 합동조사단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기술, 이지스 전투체계, 원자력잠수함 기술 등이 유출됐는지 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한화오션은 정부의 보안 지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민·관·군 모두 해킹에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도 우리의 뛰어난 기술이 해외에 유출돼 큰 피해를 입은 사례는 다반사로 발생했다. 실제 반도체·2차전지 등 한국의 핵심 기술이 산업스파이 등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의 '2003~2023년 산업기술 해외 유출 적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적발된 기술 유출 건수는 총 552건에 달했다. 이로 인한 피해액도 1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럼에도 산업스파이에 대한 처벌은 최근 5년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 중 1심에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 6.2%에 불과할 정도로 솜방망이에 그쳤다. 어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일이다. 

개인 윤리의식에만 의존 말고 철저한 보안관리 체계를
더욱이 방위산업분야의 기술 유출 문제는 또 다른 심각성을 야기한다. 뛰어난 방위산업 기술은 역사를 바꾸기도 하기에 더욱 엄중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일례로 신라 문무왕 시절 개발된 '노궁'은 당나라에서도 탐을 내 기술자들을 데려가 개발을 추진할 정도였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바다. 다행히 신라의 핵심 기술자였던 구진천은 조국을 배신할 수 없어 끝내 노궁의 비밀을 알리지 않아 충절을 지켰지만, 작금의 현실은 다르다. 방산업체의 보안관리가 허술한 틈을 탄 일부 기술자들이 자본주의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국가의 핵심 전력 기술을 무차별적으로 국외에 유출하면서 국가방위력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 것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전쟁 및 군사행동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방산 기술력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HD현대중공업은 현존 최고 성능을 갖춘 우리나라 차세대 이지스함 선도함인 8,200톤급 정조대왕함(KDX-Ⅲ Batch-Ⅱ)을 건조해 해군에 인도할 예정이며, 최근에는 6,500톤급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기본설계를 성공적으로 완료하는 등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뛰어난 기술을 유출하지 않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개인의 사명감과 윤리의식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기밀자료의 유출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방산업체의 철저한 보안관리 체계가 갖춰져야 할 것이다. 이번 한화오션 잠수함 기술 유출에 대해 관련 당국의 철저한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은 물론, 관련자 등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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