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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대군께선 어떤 분이신가요?"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제일 처음으로 묻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대군을 따를 사람들이니 성정이 제일 궁금한가 보았다.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성정이 대쪽 같은 분이십니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성격이십니다."

 이선달은 자신이 대군과 인연이 된 사연을 들려주었다.

 "나는 원래 강원도 삼척태생입니다. 바닷가 삼척이 아니라 삼척에서 태백산으로 가다 보면 심포리라는 가파른 산비탈에 자리한 동네이지요."

 사실 이선달은 아주 어렸을 적의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제일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나중에 부모들이 들려준 것이었다. 심포리는 워낙 경사가 심해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것이 불편할 정도였다. 그래도 땅은 기름져 농사는 해마다 풍년이었다. 

 이선달의 부모는 이제 막 걸음을 걷기 시작한 이선달을 밭 가에 놓아두고 밭일을 했다. 한참 밭일에 몰두해 있던 어머니가 아이를 바라본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이가 밭고랑으로 굴러 내리고 있었다. 얼마나 빨리 굴러가는지 아이를 잡기 위해 뛰기 시작했는데 잡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이백 고랑이 넘는 밭을 굴러 내려가 평평한 곳에 멈추었다. 

 뒤따라 내려간 기동의 어머니는 사색이 되었다. 얼른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를 일으켜 세우니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이선달의 부모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굴러 내려가는 네 모습이 어땠는지 아니? 마치 새털이 굴러가는 것 같았어. 몸에 흠집 하나 잡히지 않았지 뭐니. 마치 산신령이 널 보호해주시는 것 같았어."

 그러나 이선달은 그때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했다. 부모들이 하도 들려주어서 그랬는가 보다 했다. 자신을 지켜주었다는 산신령은 부모들의 몸은 지켜주지 않았다. 기동이 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 

 삼척지방에 엄청난 비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산이 무너져 이선달이 사는 집이 흙더미에 묻혔다. 이선달의 부모와 형제들은 모두 흙더미에 묻혀 죽었는데 이선달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산사태가 끝난 후 이웃 사람들이 찾아보니 집은 흔적도 없이 흙더미에 깔려 있는데 아이 혼자 흙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어떻게 아이 혼자 살아남은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 후로 이선달은 가까운 곳에 있는 미인폭포 옆의 암자에 맡겨졌다. 미인폭포를 찾아가는 길은 아주 험했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을 끼고 있는 폭포였다. 그 폭포 위쪽에 조그만 암자가 하나 있었다. 암자에는 젊은 스님이 한 분 있었는데 택견의 고수였다.

 이선달은 그 암자에서 십 년을 스님과 함께 살았다. 스님은 틈틈이 이선달에게 택견을 가르쳤다. 이선달은 한 가지 동작을 가르치면 두 가지 동작을 만들어 냈다. 십 년을 가르치고 나니 이선달이 스님보다 택견 솜씨가 훨씬 뛰어났다. 

 "내가 그때 거기서 나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왜요? 조그만 암자의 스님보다는 세상살이가 더 낫지 않소?"

 "세상이 이렇게 어지러운 줄 알았으면 뭐 하러 나왔겠소."

 "다 팔자소관이 아니겠소."

 열다섯 살의 이선달은 스님과 함께 삼척장에 갔다가 남사당패를 만났다. 이선달은 남사당패의 놀이에 넋이 나갔다. 스님의 눈을 벗어나 몰래 숨어 있다가 삼척장을 떠나가는 남사당패를 따라붙었다.

 남사당패의 우두머리는 이선달의 택견솜씨를 보고 외줄 타기를 가르쳤다. 이선달의 외줄 타기는 남달랐다. 여느 외줄 타기 보다 속도가 엄청 빨랐다. 줄 위에서 몸의 중심을 잡느라 시간을 보내는 법이 없었다. 줄 위에서 공중제비를 도는데 땅 위에서 도는 것 못지않게 빨랐다.

 이선달이 대군을 만난 것은 남사당패가 강원도와 함길도를 돌다가 원산에서 머물 때였다.

 "대군께서 나의 외줄 타기를 보시고는 나만 따로 대궐로 불러들였지요. 형씨들께선 한양에 가보기는 하시었소?"

 "쩝. 우리는 아직 한양 구경을 못한 시골뜨기들이오. 댁은 좋겠소이다. 한양에서도 대궐 안에까지 들어가 보았다 하니."

 "그래 대궐이 좋긴 좋습디까?"

 "좋고말구요. 구중궁궐이란 말이 왜 생겨났겠소. 그야말로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시골 사람이 들어가면 나오는 구멍을 찾기가 쉽지 않지요."

 언양에서 올라 온 다섯 무사는 이선달의 대궐 이야기에 넋을 놓았다. 밤이 깊어 축시가 될 때까지 대궐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이제 그만 자도록 합시다. 대궐 이야기는 내일마저 하도록 하지요."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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